Page 28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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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개탄해서  유지(遺誌)에서나  알까  싶어  무술년  가을에  먼저  사직(史直)에서  그  땅을

              찾아  거의  찾다가  그만  두었는데  무덤의  제도가  엄연한  것이  어제  쓴  듯  하고  가운데
              질그릇 조각 몇 개가 있고 안은 모두 석축이었다.

                다음 토성에 가 보았더니 그곳 역시 그러하여 겨우 돌이 나온 데서 중지하고 전의 봉

              분 그대로 다시 쌓았다. 아,  그 묘역에서  비록 빙거(憑據)할 만하나 상고할  만한 금석문
              (金石文)이  없는  것이다.  이에  여러  자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부지(府誌)에  실린  바는
              유허(遺墟)요 고국(古國)이니 어찌 믿을 만한 유적이 아니겠는가? 이미 그 분묘가 이 산
              속에 있는 것을 알았으니 향화(香火)를 영원히 끊어 자손들이 한탄하기보다는 단을 설치

              하여  제사를  지내  조금이나마  추모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하고는  유
              허  동쪽 월계(月桂)  앞에  돌로  단을  쌓고  해마다  한번  제사를  지내면서  그  시말을  돌에
              새겨 알리려고 한다.


                아,  목조의  황비(皇妣)  이씨의  적(籍)이  삼척인데  태조조(太祖朝)를  당해  목조의  외가
              라  하여  군(郡)을  부(府)로  승격시키고  서대(犀帶  무소뿔로  장식한  혁대)까지  하사하여
              총애하였으며  지금  이  김씨는  또  우리  효공왕  어머니의  외가이다.  내가  선파(璿派  임금
              과 같은 집안)로 이곳에 부임해 이 사람들을 보니 감회가 많고, 그 선조의 묘소 일이 또

              마침  노동(蘆洞)  동산(東山)의  일과  비슷하니  후손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파  동정이
              가서 마침내  글을  잘하지 못한  것을  잊고  삼가  이상과  같이  써서  김씨들의  추원보본(追
              遠報本)하는 정성을 돕는다.





                                           경자년(一八四十)   월    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삼척도호부사 겸강릉진관병마동지첨절제사(行三陟都護府使
                                                    兼江陵鎭管兵馬同知僉節制使) 완산(完山) 이인원(李寅元) 지음.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승정원좌부승지 겸경연 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지제교(行承
                                    政院左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知製敎) 송상래(宋祥來)(一七七三)글씨를 씀.
                                                                                   <三陟金氏大同譜1卷>




















              28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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