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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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曹判書金公墓碑에 새긴 글
資憲大夫(정2품) 禮曹判書 金公 龜齡의 묘지는 삼척 북쪽 쇄운리 설운산에 작
은 표식과 함께 있었으나, 壬子(1972)年에 석회석 공사를 피하여 다시 쇄운산 마
전골 丑坐 未向으로 다시 모시고, 貞夫人 南陽 洪氏를 合祀하였다. 3년이 지나서
甲寅(1974)年 늦가을에 후손들이 모여서 탄식하기를 대성으로 顯祖를 너무 간략
하고 儀節을 갖추지 못하였음을 어찌 볼 수 있으랴. 이에 의견을 물어 모두가 힘
을 모으니 立石할 자금이 풍부하게 모아졌다. 炯佑가 나에게 碑文을 付託하였으
나 어찌 적게 배운 내가 어찌 감히 사양하였으나 감당하지 못해 부득이 글을 쓰
니 三陟金氏는 高麗때 三韓壁上功臣으로 銀靑光祿大夫에 責祿되고, 上柱國左丞相
을 지내신 悉直郡王 渭翁을 鼻祖로 하여 이로부터 高官大爵이 이어지니 동방의
큰 명문거족이 되었다. 5世孫 偞永은 監司를 지내시어 閥門을 이루었고, 7世孫
自柱는 대사간을, 10世孫 光鍊은 內書舍人(고려 종4품)을 지낸 모두가 드러난 조
상들이시다. 高祖父 寶瑛은 進士를 하셨고, 長子 薡新은 淸安縣監(종6품)을 지내
셨다. 公(龜齡)은 두 아들을 두셨는데, 장남 光瑞는 壽陵 參奉(종9품)을 지내셨고,
次男 榮瑞는 通政大夫 都統使를 지내셨고, 參奉(光瑞) 都統使(榮瑞)의 長男 三奉
은 吏曹參判을, 光瑞의 장남 希慶은 朝奉郞 權知奉事(종8품)를, 봉사(希慶)의 長
男 繼仁은 通政大夫 訓鍊院 奉事를, 次男 海仁은 參判(종2품)을, 三奉의 子 春熙
는 通政大夫(정3품 堂上官)를 지냈는데 나머지는 번다하여 전부 기록치 못한다.
애석하게도 세월이 오래되어 文獻이 失傳되고 없어서, 德行을 표함에 官職의 기
록이 또한 없어져서 전하지 못하니, 평소에 전해지는 言行을 상세히 알 수가 없
다. 그러나 子孫들이 倉監하고 孝道와 恭敬함이 서로 전하니 이는 하늘이 베푸시
는 보답으로 가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명을 쓰니 夏나라와 殷나라에 있
었던 일을 孔子가 杞나라와 宋나라의 그 徵候 부족함을 항상 歎息하였는데 후세
에 士大夫家에 孝行과 恭敬 말고 그 무엇을 恨하리오. 김씨가 푸른 양탄자 같이
오랜 세월토록 다함이 없이 서로 전하기를 다하여 영원한 棟粱이 되도록 오직 하
느님이 도와주실 것이다.
檀紀四千三百八年 乙卯 三月 上澣
唐城 洪鍾凡 撰 : 당성(남양)인 홍종범이 짓고
江陵 崔中熙 書 : 강릉인 최중희가 쓰다.
주두손 진기
後孫 炯喆 鎭億 鎭赫 鎭邦 在益 鎭海 鎭福 炯瑞 鎭文 炯奎
炯吉 炯善 鎭學 允河 完壽 鳳壽 東涉 競河 福壽 在夏
正河 鎭大 謹竪 삼가 세우다.
제6편 지파기(支派記) 4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