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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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경 대 기(萬 景 臺 記)
여기 九美後山 53番地 聖山峯에 우뚝선 萬景臺 는 朝鮮朝 光海君 때 三陟金公
勳께서 創建한 亭子이다. 公의 字는 元忠 號는 新堂이며 官은 通訓大夫司僕寺僉
正(통훈대부사복사첨정)이요 悉直郡王(실직군왕) 渭翁(위옹)의 17世孫이며 父君이
신 梧山(오산) 良弼公(양필공)은 1510年(中宗 5) 三浦倭亂(삼포왜란) 때 功을 세
운 어른으로 宣武原從功臣(선무원종공신) 禦侮將軍(어모장군) 行(행) 慶尙道 鎭管
兵馬同僉節制使(경상도 진관병마동첨절제사) 統虞侯(통우후)와 東來府使(동래부사)
를 지내셨다.
新黨公 勳은 性稟이 英邁하여 淸廉하고 곧은 志操로 官에 계시다가 1613年(光
海君 5)에 鄕里에 돌아와 桐淮里(新堂村)에 사시면서 萬景臺를 創建하고 風光을
즐기면서 갈매기를 벗 삼아 낚시로 歲月을 보내셨다.
東은 茫茫大海이요 北은 松蘿海邊(송라해변) 白沙蒼松(백사창송) 10里許 요 西
는 莊嚴한 頭陀山(두타산) 景觀이 뒤뜰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고 千길 벼랑 아래
箭川江(전천강)은 悠悠히 東海로 흐르니 實로 萬景臺는 竹西樓(죽서루)와 双壁을
이루어 詩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660年(顯宗 1) 府使 許穆은 이곳을 觀賞하여 萬頃이라 하였고 1796年(正祖
20) 府使 유한준(兪漢雋)은 詩를 읊어 懸板으로 남겼으며 1872年(高宗 9) 亭子를
重建하니 海石 이돈상(李敦相)은 亭子後面에 萬景臺額板을 걸었고 工判 김원식(金
元植)은 上樑文을 지었으며 한성부윤(漢城府尹) 이남식(李南軾)은“海上名區”懸板
을 걸었다.
1924年 甲子에 다시 亭子를 重建하니 名儒 홍정현(洪政鉉)은 上樑文을 지었으
며 當代名筆 玉藍(옥람) 한일동(韓溢東)은 亭子前面에 萬景臺額瓣을 걸었다.
이 萬景臺는 現在 三陟金氏 府使公派 松亭宗中(부사공파 송정종중) 後孫들이 管
理, 保存하는 이 地域이 자랑하는 由緖 깊은 遺蹟이다.
중수기록(重修記錄)
西紀 1872年 高宗9年 壬申年 秋
西紀 1924年 甲子 後孫 : 源益, 洛榮, 冑榮--- 重修
西紀 1943年 癸未 後孫 : 炯益, 大榮---石柱로 改造
西紀 1977年 戊午 後孫 : 炯述, 炯九, 炯旭, 德基 木工李秀東 改修
西紀 1998年 戊寅 丹靑 및 立石
48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