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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0년 11월 25일 수요일                                                                           책과 이야기





                                                                                                                                                                                                                                                                                                                           제6장 불우에서 부른 노래
                                        -경남정신의 뿌리-



                         남명 선비문화를 찾아서



                                                                                                                                                                                          김종간  향토사학자

                                                                                                                    이어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

                                                                                                                                                                       부령(薄領, 관무 또는 공무)에서 한가로움 겨우
                                                                                                                                                                       반나절 훔쳤네.
                                                                                                                    남명의 시와 조 즙, 박홍미, 류여각, 정명주, 이거원, 전                  함허정 맑은 경치 옛 금관국이라.
            이어서>>>                                            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자윤의 흥청망청 속에 쓴 시를 찾아본다.                             연못에 소낙비 내려 관복을 벗었더니
                                                              이같은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창의했던 의병들의 존재,
                                                                                                                                                                       대밭 섬돌에 바람 가벼워 벽옥처럼 차구나.
                                                              특히  경상좌도  경계의  경상우도  지역에서  일어났던                                  함허정(涵虛亭) - 조 식曹植
                                                              남명 문인들의 의병활동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휘장 아래 가인은 절세미인인데
            3. 남명학파 의병활동의 의의                                  먼저 정인홍을 비롯한 경상 우도의 남명 문인들이 의                                    雲騰蛟屋誠無梁 신등교옥연무량                          자리의 호걸 열사람은 어우러져 구별하기도 어렵다.
                                                              병의 궐기를 촉구하면서 각 지역으로 발송했던 격문                                     虛簡酒來見直方 허개함래견직방                          하늘 아래 누가 이 밤처럼 모임을 가질까
            경상우도에서 시작된 남명 문인들의 의병 활동은 임                       (文)의 내용은 인근의 많은 사족과 백성들에게 애국                                    傑閣檀南漫好大 걸각천남만호대                          머물었던 자취 반쪽 비단폭에 남기리라.
                                                                                                                              老虯分北剩風霜 노규분북잉풍상
            진왜란  초반,  흩어진  민심을수습하고  장차의  반격과                  심을 고취시켰다. 또 그들 휘하의 의병들이 거두었던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기반이 되었다. 어떻게 이것                      승전 소식은 사족과 백성들을 고무시켰다. 왜란 초반                                    裳花館裏笙歌咽 당화관리생가인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스물 아홉 번째
            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임진왜란                      너무나 일방적으로 조선군이 몰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王母池邊河漢凉 왕모지변하한량
            초반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임진왜란                      경상도  일원의  패잔병이나  백성들  가운데는  일본군                                 集落生涯寒落水 한락생애한락수                          작가 조 즙은 1568년(선조 1)에 태어났으나 죽은 날은
            초반의 상황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을  '신군(神軍)'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나타날  정도였                              欲將理恨引杯長 욕장리한인배장                          전하지 않고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화천
            1592년 4월 13일, 부산에 처음 상륙했던 일본군은 이                  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경상우도 의병들의 승전 소식                                                                             (花川) 본관은 풍양으로 선조 24년(1591) 생원시에 합
            후 승승장구했다. 조선군은 4월 14일과 15일 부산성                    은 많은 패잔병들이나 백성들에게 '일본군도 해 볼만                          교룡에 올라 탄 신기루 같은 들보에 제비 집이 없고                       격하고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
            과 동래성을 내준 이후 지리멸렬했다. 오랫동안 계속                      한 상대'라는 자신감을 심어 주어, 자연히 많은 수의                         하나 되어 허공에 잠겼다는데 와서 보니 네모가반듯하다.                     치다  1622년  등극사에  임명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된 대평 시절 동안 전쟁을 위한 준비가 전혀 없었기                      패잔병과 백성들이 도망을 멈추고 의병장들의 휘하로                           훌륭한 전각 남쪽에서 만연하게 웅장하고                              1623년 동부승지로 명종실록』 편찬에 부교리로 참여했
            때문이었다.  유사시에  중앙에서  장수가  내려와서  지                  종군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지방에서도 의병이                          늙은 용이 북쪽을 쳐서 바람 서리 더한다.                            다. 1627년 3월 2일 김해부사로 부임하여 1629년 10월
            방의 병력을 끌어 모으는 제도인 제승방략(制勝方略)                      일어나는 것을 촉진시켰다. 요컨대 남명 문인들의 의                                                                             까지 재임하였으나 함허정에서의 시작(詩作)이 문책 사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우선 병력을 제대로 동                      병활동은 흩어져 버린 경상도 일원의 민심을 수습하                           당화관(함허정)에서 들리는 구슬픈 생황소리에                           유가 되었다.
            원할 수 없었다. 당시 조선에서 가장 유명했던 신립                      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서왕모 잔치하던 연못가에 은하수는 서늘하다.                           5일 동안 관리들이 기생과 함께 풍류했으니 당연할 것
            (申立) 같은 장수조차 제대로 된 정규군을 거느리지                      가세하는 백성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의병의 규모가                           한락한 물가 찬바람에 낙엽같은 생애라                               이다.
            못하고, 들판에서 김 매던 농민들을 억지로 끌어 모                      날로 커지자, 의병군의 조직은 더 유기적으로 편제되                          장부 한을 묻으려 잔을 들어 길게 마신다.
            아 병력의 숫자를 채우는 형편이었다.                              고  작전  반경도  갈수록  확대되었다.  곽재우,  정인홍                                                                                  함허정(涵虛亭) - 鄭昌詩정창시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수천의  병력을  모았다고  해                  등 남명학파 의병장들의 승전으로 낙동강의 방어선을
            도 그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고, 그나마 대부분은 싸                      잘 지켜냄으로써 경상우도를 보호했을 뿐 아니라 궁                                         함허정 - 박홍미朴弘美                                        逆旅招邀近 역려초요근
            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망치기 일쑤였다. 실제 신립                      극에는 일본군이 호남지방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                                                                                             相逢臭味調 상봉취미조
            이 1592년 4월 말, 문경 새재(鳥嶺)를 방어하기 위해                  다.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이 보호됨으로써 조선 조정은                                    京洛交遊二十年 경락교류이십년                                         極談仍辦日 극담잉판일
            끌어  모았던  병력  가운데  절반쯤은  적의  북상  소식                경제적으로 다소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일본군은                                    中間聚散若雲烟 중간취산약운연                                         痛飮更連宵 통음갱련소
            만 듣고도 전부 도망쳐 버렸다. 신립이 천혜의 요새                      상대직으로 군량 보급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었다.                                    一尊嶺海開靑眼 일존영해개청안
            인 문경 새재를 버리고, 승산이 거의 없던 충주의 탄                     이 같은 사실들을 고려하면 남명학파의 의병 활동은,                                    千古峨洋屬斷絃 천고아양속단현                                         勝事天應借 승사천응차
            금대에서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이같                      이순신 장군의 해상에서의 활약과 더불어 임진왜란을                                                                                             他年跡已消 타년적이소
            은 이유 때문이었다.                                       극복하고 국가를 보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賓主肯慚膝閣會 빈주긍참등각회                                         分留氣像在 분유기상재
            이에  비하면  일본군은  한  마디로  '준비된  군대'였다.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風流不成竹林賢 풍류불감죽림현                                         墓寫上蛟綃 모사상교초
            조선에 상륙한 일본군은 총 병력이 18만 명에 이르는                                                                                     但愁勝跡仍消歇 단수승적잉소헐
            대군이었고,  그들의  지휘관은  전국시대(戰國時代)를  4. 조정의 평가와 의병장들의 말로                                                               分付龍眠畵手傳 분부용면화수전                          나그네를 가까이 불러주어
            거치는 동안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었으                                                                                                                                서로 만나니 마음과 취미가 어울렸네.
            며, 병사들은 새로운 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                      이미 자세하게 언급했듯이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맞                           서울과 가락을 오가며 사귄지 20년                                마음이 통하여 날짜를 정했으니
            다. 더욱이 일본은 왜란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조                      아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남명학파의 의병활동은 분                           중간에 모이고 흩어짐이 구름과 안개 같아라.                           술을 흠뻑 마시며 밤을 이었다.
            선어 통역관을 대규모로 양성했고, 수시로 정탐꾼들을                      명 빛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문인들에게 실천적인 지                          고개들고 영해(嶺海)를 바라보니 청안(靑眼)이 열려
            풀어 영남에서 서울에 이르는 조선의 지리적 상황을                       식인이 될 것과, 국가의 안위를 염려하여 문무를 겸                          천고의 높고 넓은 땅에 끊어진 가야금 줄을 잇는다.                       훌륭한 사적이라 날짜를 하늘에 빌리고
            탐지하는 등 조선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따라서 준비                      전할 것을 강조했던 남명 선생의 가르침이 바탕이 되                                                                             훗날에는 자취마저 사라질까.
            된 군대와 오합지졸과의 싸움은 그 승부가 애초부터                       어 가능했던 것이었다.                                          손님과 주인이 등왕각에서 즐기며 부끄러워하나                           나누어 머무른 기상(氣像)이 있으니
            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명학파의 의병활동은 이후의 정                           풍류는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뒤지지 않는다.                           모사하여 비단 폭에 올린다.
            더욱이  당시  경상도  지역의  관군  지휘관들  가운데                  치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다만 아름다운 자취 사라질까 걱정이니
            는  감사(監司),  병사(兵使),  수령(守令)을  막론하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측면이  적지  않았다.  백성들                      화가에게 분부하여 그림으로 그려 전하리라.                            작가 정창시는 유여각(柳汝格) 동래부사가 시서에서 언
            고 적을 막아 싸우기는 커녕 적이 오기도 전에 도망                      사이에서  의병장들의  인기가  올라가면  갈수록,  공인                                                                         급한 자여(自如) 정명주(鄭鳴周)로 짐작할 수 있다.
            쳐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했던 인물들이 많았                       (公人)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 지방수령                                         함허정 - 조 즙趙濈
            다. 1592년 4월 14일 부산성이 함락되자 마자 도망쳤                  이나 관군 지휘관들의 위신은 떨어지게 마련 이었다.
            던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 박홍(朴泳), 동래성이 일                     그것은 결국 당시 조선왕조의 행정수반이자 조선군                                      簿領繼偷半日間 부령재유반일한
            본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총사령관인 국왕  선조의 위신까지 흔들리게 만드                                      涵虛淸勝舊金官 함허청승구금관
            의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쳤던  경상좌병사(慶尙左兵                                                                                    蓮池雨急紅衣落 연지우급홍의락
            使) 이각(李正), 일본군과의 접전을 회피했던 경상감                     는 것이었다. 1601년(선조 34) 5월 3일, 선조는 임진                              竹例風輕碧玉寒 죽제풍경벽옥한                                       다음호계속>>>
            사  김수(金碎)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었다.  백성들                 왜란 당시 공을 세운 인물들을 시상하라고 지시하면
            을 이끌고, 그들을 통제해야 할 지휘관들이 먼저 도                      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帳底佳人顓一代 장저가인전일대                                                              김해일보
            망쳐 버리자 백성들은 갈팡질팡하면서 피난하기에 급                                                  다음호계속>>>                             席中豪十並雙難 석중호십병쌍란
            급했고,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흉흉해졌다.  이같은                                                                                天涯孰辨今齊會 천애숙변금소회
            상황에서  일본군을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陳琳應留半壁紗 진적응류반벽사
            것이었다. 임진왜란 초반 일본군이 경상좌도를 무참하
            게 유린하고, 내륙 깊숙이 진입하여 북상할 수 있었                                                        김해일보



            오페라 <허왕후> 가야 역사 배경으로


                            대본·작곡·연출에 박차                                                                                                             의리로 뭉친 “으리義리”展


          창작오페라  <허왕후>  출연자  오디             State  University에서  Music  라 제작팀이 구성되어 연출과 제작
          션의 선정자가 25일 발표되면서 김               Theatre&Opera  Performance  진행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7월
          해시와 김해문화재단의 오페라 제작                석사와 한양대 연극영화과 박사과정                부터 시작했으며, 주요 아리아 작곡                                                     김해문화의전당에서 12월 1일~6일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이날 발표               을  수료하였으며,  2010년부터  2012         이  완료되면서  11월  18일(서울)과
          된 오디션 심사결과 10명의 주·조               년까지 뉴욕 브로드웨이 시어터 무                20일(김해)  이틀간  창작오페라  출
          역 가운데 김해 오디션 응시자 4명               대 디자인과 연출, 코퍼스타 컴퍼니  연자 오디션을 진행하게 되었다. 오
          을 포함해 모두 9명의 성악가가 선               상임연출을 맡은 바 있다.                    디션에는 현장 결시를 제외하고 해                                               김해민화연구회(대표  옥도윤)가  오는
          발되었으며, 이날 선발되지 못한 김               또한  5월부터  6월까지  작곡가  선            외에서 활동한 성악가 29명을 비롯                                              12월  1일부터  6일까지  김해문화의전
          수로  역은  추후  별도  캐스팅될  것           정을 위한 전국공모를 실시하여 총  하여  전국  각지에서  총  87명의  성                                                       당 윤슬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제5회 정
          으로 알려졌다.                          18명의 작품을 접수하였으며, 이 중  악가가 응시하여 뜨거운 반응을 보                                                           기회원전을  개최한다.  전시에는  옥도
          김해문화재단은  지난  4월  제작  시            7월 14일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김              였다.  이는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윤 작가 외 김문정, 김종숙, 문미영, 서
          행단계부터  9인의  오페라  전문가들             주원  작곡가가  선정되었다.  김주원  인한 문화예술계의 위축에도 불구하                                                          경임, 양외분, 최숙자, 황재임 등 총 7
          로  제작운영위원회를  운영하며  제              작곡가는 제57회 동아음악콩쿠르 서               고  철저한  방역  지침  준수하에  성                                          명의 회원이 참여하며, 그간 준비해 온
          작방향  설정과  제작진행  방안  등             양음악  작곡  부문  1위,  제45회  중         공적인 오디션 개최를 시행하여 성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을  논의   결정해왔다.  제작운영위             앙음악콩쿠르  작곡  부문  2위,  제36          공적으로 행사를 마무리 한 것으로                                               이번 전시에는 옥도윤 작가의 창작민화
          원으로  국립오페라단  박형식  예술              회 창악회 작곡 콩쿠르 우수상과 제               보인다.                                                             신작과  함께  전통합죽선과  병풍,  조명
          감독을  비롯해  서울시오페라단  이              4회 세일한국가곡콩쿠르 1위 등 다               오디션을  통해  선정된  출연자들은                                             등 같은 소품도 전시될 예정이다. 옥도
          경재  단장,  대구오페라하우스  박인             수의 음악제와 콩쿠르에서 수상하였                12월부터  2~3개월간의  연습을  거                                           윤 대표는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건 대표, 서울과 경남의 대학 음악               으며,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쳐  내년  2월  김해문화의전당  마루                                                       시기임에도 의리로 뭉친 회원들을 보며
          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제작운            오페라 작곡 차세대 예술가, 창작산               홀 오페라 허왕후 첫 무대에 설 예                                              전시를 열게 됐다.”며 민화의 좋은 기
          영위원회 심의를 통해 5월 13일 작              실 올해의 신작 창작 오페라에도 최               정이다.                                                             운이 전해지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가로 김숙영씨가 선정돼 대본 작업                종 선정되어 2021년에 전막 공연을                                      김해일보                                     김해민화연구회는 2016년 창립 이후 매
          을 맡게 되었다. 김숙영 작가는 한               앞두고 있는 젊은 음악인이다.                    (http://www.gimhaeilbo.com)                                    년  연말에  정기회원전을  개최하고  있
          양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Arizona  작가와 작곡가 선정이 완료됨에 따                                                                                          다.
                                                                                                                                               전시기간  동안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실내 전시 관람 시 방문자 명단 작성,
            ■ 공연일시 : 2021년 2월 중 예정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의
            ■ 공 연 장 :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방역  조치를  시행하며,  단체관람은  제
                                                                                                                                               한된다.
            ■ 주최·관 : 김해시, (재)김해문화재단                                                                                                                                       김해일보
                                                                                                                                                    (http://www.gimhaeilbo.com)
            ■ 문    의 : 김해문화의전당 공연기획팀 055-34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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