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책친글친 OT&2차월(확인용)
P. 24

메타인지 독서&글쓰기코칭                                                                                                       책친글친



               벗고  나서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물심양면으로  협조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리라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고작  책  한  권  받은  게  전부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심했겠어요.  다리에  힘이  쫙
               풀리고 지쳐서 복도에 있던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키  작은  한  남자가  저에게  다가오는  거예요.  제  앞에
               그  남자가  섰을  때,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옅은  노을을  등지고  있어서  그랬는지  남자의

               실루엣에서 은빛 오라가 번지고 있었어요.

                 “자료 찾으러 오셨다면서요?’
                 아마도 난감한 표정을 짓던 분이 선배인 그분에게 제 이야기를 했던가 봐요. ‘영국에서 계집애

               같이 생긴 남자애가 와서 하회탈 자료를 달라는데 줄 게 없더라.’이렇게 말이에요.
                 “그런 자료라면 하회 마을을 직접 가야 될 텐데, 가는 길은 알아요?”

                 남자가 괜스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어요.

                 “모르는데, 찾아가봐야죠.”
                 그러자 남자는 더욱 미안한 기색이 짙어지면서 “잘 곳은 있어요?”하고 물어요.

                 그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안동으로  바로  내려왔어요.  안동이라는  도시와  연고라고는

               어머니가  안동  권씨라는  것밖에  없는  제가  잘  곳이  있을  리  만무했죠.  해는  이미  서쪽으로
               져버린 후였고, 주위에는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어요.

                 “지금 찾아가긴 힘들 테고, 오늘은 일단 우리 집에서 묵고 내일 일찍 가요.”

                 그는  흔쾌히  말했어요.  그렇게  해서  그날  밤  한국의  낯선  소도시에서 처음 만난  형이랑  난생
               처음  닭똥집도  먹어보고  맥주도  마시고  길거리를  밤늦도록  배회하면서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우리  둘은  하룻밤  만에  금세  정이  들어버렸어요.  형이  말도  아주  재미있게  잘했고

               여성스러워서 다정다감했거든요. 하루만 지내려고 했는데 형이 아쉽다며 하룻밤 더 자고 가라고

               붙들어서 이틀을 안동에서 묵었죠. 그리고 헤어질 때 형이 선물로 둔 책이 바로 <연어>예요. 그
               후 제가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저에게 편지도 보내주고 우편으로 자료도 보내주고 했어요.

                 <연어>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연어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그래도  아직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겠죠.  난생  처음  본  사람에게도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준 그 형처럼요.

                 제가  <연어>라는  책에  담긴  이야기를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형 때문일 거예요.






                                                                                                                                                  페이지 24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