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2023서울고 35회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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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을 하라고 하셨고 난 못 이기는척하며 아버지의 제안을 수용하고 안성으로
           내려갔다.



             난 아버지께서 밑바닥부터 배우라고 하시긴 했지만 설마하니 박사학위도 받
           고 강단에도 섰던 나를 아주 잠깐만 노가다를 시킬 거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미
           래의 경영에 관한 생각도 하면서 목장 일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건 완벽한 착
           각이었다.



             한겨울에 사방이 트인 우사에서 하루 종일 떨며 소똥을 치우는데 얼어버린 소
           똥가루가 내 입으로 수시로 들어갔다. ”3달만 참자. 그 이상은 안 시키시겠지...“
           하지만 난 소똥만 1년을 더 치웠다.



             그 다음은 소 젖짜기, 그 다음은 목장의 각종 기계류들을 보수 점검하는 일, 그
           다음은 트랙터 운전과 각종 농기구들 조작법 익히기, 트랙터에 퇴비를 잔뜩 싣고
           목장 전체에 퇴비 뿌리기(정말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힘들다), 일 년에 두 번하
           는 호밀 사일리지와 옥수수 엔시레이지를 포함한 각종 농사, 사일로와 우사, 퇴

           비처리장, 폐·오수처리장 관리, 마지막으로 목장의 종 원, 부자재 구매, 장부정
           리, 회계처리를 배웠다. 총 3년이 걸렸다



             난 그 동안 3번이나 중간에 포기하려고 서울 처가로 도망을 쳤었다. 정말 소똥
           냄새가 지긋 지긋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지긋 지긋하고 한마디로 죽을 만큼
           싫었었다.
             3번째 가출 때 장인어른이 카길(Cargill, Incorporated)이라는 국제적인 농산
           품회사에 당시 연봉 7천의 부장자리를 얻어 주셨다.



             난 정말 기뻤고 단단히 마음먹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엄하시기만 했던 아버
           지께서 날 똑바로 쳐다보시면서 "인석아! 난 내 아들이 비록 작은 조직이라도 다

           른 사람을 지휘하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지도자는 남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몸이 편하기 위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는
           올바르고 뜻깊은 일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아나가기


           52 _ 서울고 35회 졸업 40주년 기념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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