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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역사관 이야기 서울인 2023 Winter _ Vol. 385
Q 전라북도와 전주 자랑 좀 해주시지요?
A 사실은 여기 전라북도에 발을 담기 시작한 거는 2015년부터 전북
경희궁에서 서초동으로
은행과 인연을 맺었고, 잠깐 다른 곳에 있었지만 올해 1월부터 다
시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전주하면 역시 이 양반 도시고 조용하고,
음식은 요란하지 않은 맛있는 맛을 갖고 있습니다. 사대문 안 명문고 강남으로 옮겨라
전라북도 한복판에 위치한 전주는 예부터 풍부한 물산 덕분에 고
유한 음식문화를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전라북도 내륙은 한반도를 통틀어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거의
1972년 10월 문교부가 “사대문 안의 명문 고등학교를 강남
유일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 지평선은 이내 서해바다의 수평선
으로 이전하라”는 발표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과 포개어지며 숨이 막힐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죠.
당시 서울에는 5대 공립·5대 사립 명문고라는 말이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고장이 안타깝게도 지역경제 여건으로는 지방 중
서울·경기·경복·용산·경동고가 5대 공립 고교였고, 중
에 제일 어렵습니다.
앙·양정·배재·휘문·보성고가 5대 사립고교 였다. 여기
우리 도지사님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말로 발에 땀이 나도
록 뛰고 또 뛰고 계십니다. 에 경기·창덕과 이화·숙명·진명·정신여고가 명문 공립
A 조직 혁신이나 조직 문화는 큰 배가 갑자기 방향을 확 바꿀 수가 우리 은행도 지역과 정서적 공감대위에 전북은행의 마음, 전라북 및 사립고로 불렸다. 이 모든 고교들과 각종 학원이 서울 종
없습니다. 50년 역사를 갖고 있는 은행인 만큼 조직 문화는 차곡 도의 힘이란 뜻의 ‘전心전力’을 슬로건으로 마음을 모아 함께 응 로구와 중구에 밀집해 있었다. 아침이면 종로와 중구의 대
차곡 쌓아오며 유지 개선해야 할 것도 있으며, 혁신하고 바꾸고 원하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중교통이 등교하는 고등학생들로 마비가 될 정도였다.
버려야 할 것과 많이 섞여 있습니다. 당장의 어떤 결과를 도출해 서울시는 이미 1966년 ‘남서울계획’과 ‘새서울 백지계획’을
낼 수 없는 방식으로 할 수 밖에 없어요. 은행은 상대적으로 보수 Q 끝으로 모교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행장님에게 시작으로 강남개발에 대한 구상들이 발표되고, 1975년 ‘3핵도시’를 개편하면서부터 여의도와 강남개발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
적인 조직이죠. 그만큼 느린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 서울고는 어떤 학교였는지요? 다. 목표로 하는 인구분산과 교통난 해소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강북에 있는 학교를 이전하는 것이었다.
화의 시대에 우리가 슬로우만 할 수 없고, 시대에 잘 적응을 할 수 A 서울고 ‘서’자만 나와도 가슴 뭉클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죠. 우선 도심의 8개 중·고교를 강남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공립학교는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직접 교사와 부지를 매각해 신축
밖에 없음을 모두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 드린대로 다른 학교에 비해서 학교 교정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경희궁 옛 부지를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서울시는 시가 소유한 구획정리지구 체비지 중 학교 용지를 불하하고 은행융자를 알선하면서 강남 이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수 없이 해오고, 남들이 안하는 것을 교정 느티나무와 신관 올라가는 길에 아카시아 향기는 평생 잊을 계획을 실천해 갔다. 1976년 경기고가 강남 영동2지구(삼성동 일대) 이전을 시작으로 1978년 휘문고와 정신여고가 이전하게 된다.
시도하는 등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혁신적이며 선도적 이미지 수가 없답니다. 또한 선생님도 훌륭하셨고, 학생들도 착 했습니다. 1977년 3월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두 일간지의 ‘서울고 강남 이전’제하 기사에서 서울고 교지는 현대그룹에서 인수할 것이라고 보도했
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게 자랑거리고 자랑 투성이었어요. “어디 고등학 다. 서울시는 본교 교지 32,165평을 매각하되 그 중 경희궁터가 있었던 1만여 평은 매입자측으로부터 기부 받아 경희궁을 복원하고 나
그리고 조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인재발굴을 하여 길을 교 나왔냐?”고 먼저 물어봐주길 바랐으니까요.(웃음) 머지는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해 7월 서울시는 도시계획고시 227호로 관악구 신림동 산197의 1 일대의 25,605
열어주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것을 사명으 내 젊은 시절, 사춘기 시절에 함께 하셨던 고3학년 담임이시며, 제 평을 본교 시설로 결정 본교 신축 부지로 감정 선정했다.
로 알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결혼식 주례를 봐주셨던 연대성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지난해 안 1977년 9월 동창회 임원회의에서 본교 강남 이전 반대를 결의하고 1만5천여 동창, 3천여 재학생과 학부모를 대표하여 당시 김세훈(2
타깝게 작고하셨습니다. 회) 동창회장 명의로 ‘모교 강남 이전 취소 건의서’를 청와대, 서울시, 서울시교육청으로 보내고, 전교생이 광화문사거리에서 학교 이전
Q 직원들과는 어떻게 소통하시며,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시는 것 저는 학창시절 도서반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곳에서 선후배 관계 반대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와 단체생활을 배우고, 추억도 많이 만들었지요. 우리는 매일 도 그러나 학교 이전을 막을 수는 없었고, 시위를 통해 ‘좋은 이적지’를 요구하여 이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서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매입
A 20대 직원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들이 서관의 문을 닫고 가야 하니까 정말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른 한 강남구 서초동 1109번지에 마련된 22,500평의 새 교사 교지로 1980년 초까지 이전을 확정하게 된다.
우리 은행의 장래고 우리가 그들로부터 배울 점도 많습니다. 그 학생들보다 휠씬 많았어요. 요즘도 도서반 선후배와는 만남을 계 1978년 5월 학교(경희궁 옛 교정 29,800평의 교지)는 약 115억 원에 현대그룹에 매각되었고, 그 중 85억 원으로는 서초동 부지를 사
직원들이 사회를 끌고 가는 어떤 트렌드일 수 있고, 가능하면 젊 속하고 있습니다. 고, 30억 원은 본교 신축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게 된다. 마침 서초동 이적지 옆의 개인 부지를 가지고 있던 조창환(7회·현 인왕장학
은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좀 더 가능하면 귀를 활짝 열고 들으려고 전라북도내 우리 모교 동문들 모임이 있으면 참석하겠습니다. 한 재단 이사장)동문이 그 땅을 학교에 기부하여(현 운동장의 테니스장과 야구장 일부 부지)서울고가 대학교 캠퍼스와 같은 큰 부지를 갖
노력하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 번 알아봐 주시죠? 게 되었다.
도 세대 간 격차가 있어서 그러겠죠.(웃음) 현재 서초동 교사는 본관 건물이 운동장을 끌어안고 있는 일반적인 학교 배치가 아니라 주요 교사 건물과 운동창이 따로 분리된 배치
제 개인적으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말자’고 항상 되새기고 있습 취재 후 인터뷰 기사 작성 중에 백종일 은행장이 1억 원 이상 개 로, 이 구조는 이전 경희궁 터라는 큰 규모에 있었기에 가능한 배치였는데 이를 서초동에서도 비슷하게 구현하게 된다.
니다. 왜냐하면 너무 진지하고, 너무 심각하면 신선한 아이디어도 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전북 제100호(전국 1979년 2월1일 강남구 서초동 새 교사 부지에서 기공식을 갖고 22,500평의 대지에 현대건설의 설계 및 시공에 의해 연건평 6,410평
안 나오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 오히려 조금 더 경 3257호)회원으로 가입하여 몸소 이웃사랑으로 ‘상생’을 실천했다 의 새 교사 신축을 착공하게 되었다.
직된 것들을 풀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좀 더 여유로울 필요가 있습 는 훈훈한 소식을 전하며 기사의 말미 한 단락을 차지했다. 1980학년도 1학기(6월9일)에 34년 간 정들었던 경희궁터를 떠나 강남 서초동의 새 보금자리로 옮겨 본격적인 강남 교정시대를 열게
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마는 내가 너무 엄숙주의에 가까운 된다.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 우리 직원들이 항상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 ·정리/ 박영진(35회)역사관장
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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