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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경상도
107 월평교회
울주군 두동면 구미월평로 554
년 4월 13일 예수 믿는다는 단 한가지 이유
“6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로 마을회관 마당에서 공비들에게 사살되어
울산 월평교회” 순교했다. 두번째 순교자는 우재만 집사로
1950년 2월에 월평교회 앞 저수지에서 피살
월평교회는 1909년 3월 8일 호주의 왕길지 되었다. 그후 1950년 6,25 발발한 지 5일후
선교사가 전읍교회 이기연 성도와 함께 예배 인민군들이 울산에 오기도 전인데 예배단에
를 드림으로 시작된 교회이다. 월평교회의 서 기도하고 있던 정두란 집사, 조재연 성도,
최초 결신자는 우씨 집성촌의 거부이며 한 조말복 성도는 공비들의 습격으로 순교하였
학자인 우영식 씨인데 그는 선교사의 전도 다. 여섯번째 순교자는 두번째 순교자 우재
를 받고 심한 핍박을 하였으나 우영식 씨 가 만 집사의 동생인 우성만 집사로 1951년 8
족은 물론 일가친척들도 다 예수를 믿고 월 월 14일 추석에 형의 순교로 홀로된 형수를
평교회의 주축이 되었고 순교자를 내기에 이 위로하기 위해 큰댁에 찾아 왔다가 순교를
른다. 월평교회 순교자들이 순교당한 때는 하였다. 울산지역 126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
6,25전쟁이 나기 이전에 지역의 공산당인 남 데 6명의 순교자를 낸 월평교회는 2014년에
로당에 의해 순교했다는 점이다. 무신론적 고신총회의 순교자기념교회로 지정되었고
유물사관의 공산당은 기독교를 대적하고 핍 울산순교자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월평교회
박을 하고 있다. 월평교회의 첫 순교자는 우 순교자를 기리는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이
영식 씨의 셋째 아들인 우두봉 집사로 경주 순교자들의 고장을 지키기 위한 공로도 인정
에서 사업하던 중 고향집에 들렸다가 1948 되어 몇 분은 대전국립묘원에 안장되었다.
순교자 기념비
월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