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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123


                                          108  초량교회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53   http://www.choryang.org

























                    초량교회


                    초량교회는 부산진교회와 더불어 부산지방              초량교회에 가면 역사전시관이 있다. 초량교
                    초기 교회다. 배위량 선교사가 1892년 5월          회의 초기 자료들은 물론이고, 주기철 목사
                    영선현에 위치한 자신의 ‘사랑방모임’에서             가 사용하던 강대상도 보관되어 있다.
                    초량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
                    월 7일 초량교회를 설립했다. 배위량 선교사
                    는 후에 평양으로 이주하여 숭실대학교를 설                “초량교회는 늘 민족과 함께
                    립할 정도로 교육에 관심이 많은 선교사였                 질곡의 역사를 통과해 왔다”
                    다. 초량교회는 늘 민족과 함께 질곡의 역사

                    를 통과해 왔다. 구한말 근대화와 일제 강점
                    기에는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교인들과
                    함께 싸웠고 일본에 대항하며 신사참배 운동
                    을 반대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
                    성도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초량교회는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기철 목
                    사가 있던 곳이다. 초량교회 제 3대 담임목사
                    인 주 목사는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며 일본
                    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
                    다 순교했다. 담임목사의 올곧은 기질은 성
                    도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주기철 목사가 사용하던 강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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