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수정230816 이성필성지순례내지192검
P. 31

서울                                                        31


                                           17  해밀턴 쇼

                                             은평구 서오릉로 47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나도 한국 사람입니다.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윌리암 헤밀톤 쇼 동상


                    녹번동고개 은평평화공원에는 윌리암 해밀              군 창설에 이바지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
                    턴 쇼 (한국명:서위렴)  미 해군대위의 동상이 서       드대학 박사과정을 이수하던중 6. 25 소식을
                    있다. 1950년 9월 22일 서울 탈환작전중 그        듣자 아내와 두 자녀, 부모님께 “제가 전쟁중
                    가 전사한 곳이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해밀         인 한국에 가지 않고 전쟁후 평화시에 선교
                    턴대위는 일제때 미감리교선교사의 외아들              사로 들어간다는 것은 제 양심에 도저히 허
                    로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인 학교를 졸업            락되지 않는 일”이라는 편지를 남기고 한국
                    했으나 강제 추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미해            전에 참전한다. 한국어와 지리에 능통한 쇼
                    군에 장교로 입대하여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대위는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에 참전하였고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전            장군 옆에 있었고 자원하여 서울탈환작전에
                    역하고 제2의 조국 한국으로 돌아와 진해해            수색조로 참전하였다가 9,28 수도탈환 6일

                    군사관학교 교관으로 헌신하며 대한민국 해             전 29세의 젊은 나이에 소천했다. 그의 묘비
                                                       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고
                                                       기록되어있다.










                            추모비                         윌리암 헤밀톤 쇼 묘(양화진)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