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수정230816 이성필성지순례내지192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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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영락교회 & 순교자 김응락 장로
중구 수표로 33 www.youngnak.net
김응락 장로는 평북 의주군 고관면
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주일학
교를 출석하다 15세에 세례를 받고
19살에 집사 직분을 받았다. 김응
락 장로는 해방 이후 공산치하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
다는 것을 깨닫고 월남하여 안동교
회를 출석하는 가운데 1944년에 장
로가 되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월남
한 성도들이 자꾸만 찾아오자 월남
한 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설립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1945년 12월 영락교회 본당
에 한경직 목사를 모시고 베다니전
도교회 (현 영락교회) 를 설립했다.
교회가 날로 부흥하자 1950년 6월 “나는 순교도 각오한 몸입니다.
5일 현재의 예배당을 완공하고 감 이번에는 공산당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사예배를 드렸는데 한국전쟁이 발 예배당 입당식을 한지 한 달도
발한 것이다. 이에 많은 성도들이 지나지 않았는데 교회를 버려 두고
피난길에 올랐지만 김응락 장로는 어디로 간단말입니까?”
예배당을 버리고 피난갈 수 없다고
하면서 교회를 지키다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김응락 장로의 비문에는 이렇게 쓰
여 있다. “무거운 발길을 옮겨 골고
다로 향하신 피 어린 주님 발자국
따라 생을 다하고 의의 길 택하시오
며 모진 붉은 돌에 쓰러지시 올 때
스데반의 미소 또한 그 광채 만면에
사무치고 마지막 한 방울 피 흘리시
도록 영락의 제단 부둥케 안으사 숨
을 거두셨으니 베다니뜰에 첫번 맺
은 순교의 원공은 장하시다.” 김응락 장로
순교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