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5 - 강화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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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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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ws0190 파리풍경, 포장지에 아크릴, 54x39cm, 1996

                                   주지하듯‘우연의 지배’라는 시리즈의 이번 작업들은 그가 일종의 그리기의 강박과념에서 서서히 벗어나
                                 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 삶의 전반적 운행과 그 원리를 해명하는데 통달한사람처럼 자신도 의식
                                 하지 못하는 사이에 화면 속의 형태를 자꾸만 지워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형태에서 멀어지는 것이 오히
                                 려 더 해방감을 주고, 형태가 지워진 데서 더 강한 호소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이전의 작업과
                                 는 일관성을 견지하면서도 한 차원 고양된 상태로진화한 최근의 <우연의 지배-고기잡이>(1995), <우연의
                                 지배-생명>(1996)등의 작품 역시 불필요한 형상이나 색채가 극도로 절제된 화면을 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선과 면이 단순하고 시원하고 더욱 대담한 것으로 확대됨에 따르는 평면적이고 이차원적 한계를 상쇄하기
                                 라도 하듯 나무나 헝겊, 동판 같은 매체를 덧붙이는 방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에는
                                 금, 은색의 도입이 이루어지고 선의 형태 또한 말뚝과 같은 것으로 가시화되는데 그것은 마치 꿈틀거리는
                                 강인한 생명체처럼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마치 미니멀회화를 보는 것 같으나 미니멀 작업과
                                 는 그 컨셉과 형상에서 다분히 차별되는 이른바 동양적, 한국적 사유의 한 방식으로서 그의 텍스트는 자
                                 리한다. 이를테면 <고기잡이를 위한 씻김>이라든지 고기잡이를 위해 하늘에 말뚝 박은 형상의 회화는 종
                                 교적인 혹은 범신론적인 철학의 해석으로 볼 수 있으며 여하간의 창작행위를 통한 세계와 자아의 정화를
                                 꿈꾸고자하는 작가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재현의 방식에서 탈
                                 피해 최소한의 조형언어로 탈바꿈한 그의 작업은 그가 공간인상에 대한 재현의 방식을 새롭게 터득했음
                                 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 벌써 이순의 그것처럼 그의 화면은 에너지의 발
                                 산이 예전처럼 공격적이거나 거칠지 않으며 순하고 조화로운 자연의 섭리가 그대로 용해되어 나타나는 것
                                 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광릉수목원 근처의 이곡리 산속의 작업실로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더 명상적으로 바뀌어가
                                 고 있다. 그것은 그가 동양적 지관과 기(氣 )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모색하면서 그림과의 교감에 따른 자연
                                 스런 귀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인 의미에서의‘자연’이며 그 자연은 언
                                 어로 표현되기 이전의‘자연’으로서, 그런 의미에서 노장사상의 도의 개념이 무의식의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대상은 폐사장의 돌덩어리이다. 쓸모없는 땅에 쓸모없이 방기된 이름
                                 없는 돌에서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발견하고 거기에 미적 가치를 부가하는 작업에 천착한다. 그는 이런 돌
                                 덩어리와 같은 대상을 ‘스스로 그냥 있는 것(자연)’ 자체로 표현하려 하되 그것이 서술적이지도 설명적이지
                                 도 않게 대범한 선과 면으로 화면에 점유케 한다. 이런 이름 없는 돌덩어리에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리하
                                 여 아무런 명명조차 갖지 못했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작업은 따라서 어쩌면 단순한 재현이나 묘
                                 사의 차원으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본질의 형상적 환원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의미 없
                                 던 사물에 에너지와 또 다른 새로운 형상을 주입하며 그것들이 서로 교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영매로서의
                                 예술가의 속성이라 했을 때, 그의 작업의 친화력은 그 자신의 경험의 질적 풍부함을 자유롭게 승인하는 정
                                 신에 다름 아니며 그의 작업의 의미 매김도 이 지점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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