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4 - 강화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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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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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들길에서 내가만난 화가들
신기神氣의 화가-강구원
우연과 필연의 합일을 회화속에서 추구
-화가와 그림과의 교감-
글/ 이석우(미술비평가, 경희대교수) 1993
침묵과 갈증을 함께지닌 사람
내가 강구원을 만난 것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의 아마추어 그림 모임인 ‘아틀라스(Atlas)’를
통해서였다. 그는 이 그림모임의 미술지도를 맡고 있었다. 그때 30대 초반 이었을 그는 조용한 인
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이룰 것을 이루지 못한 강한 갈증 같은 것을 지닌 사람
처럼 보였다. 그를 만난 92년께, 그는 심한 그림고민을 앓고 겨우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던 참
이라 했다. 대학 시절부터 객기로 그려대던 서양식의 그림, 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그림이 점
점 고통스러워짐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림을 자꾸 지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되었다. 형태에서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해방감을 주고, 형태가 지워진데서 더 강한 호소력
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림은 붓끝과 손목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넋과 정신
을 다하여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농악놀이를 떠올리곤 했다. 큰아버님이 상쇠이고, 아버지 형제들이 소리꾼
이었으므로 늘 농악대를 접할 수 있었다. 북, 장구, 꽹과리를 함께 치며 신나게 돌아가는 굿판이
절정에 달하면거의 무아지경에서 휘젓는듯했다. 땀에 흠뻑 젖은 농악대의 그 야릇한 만족감이나,
온 힘을 다한 전체성 같은 것이 그림에도 배어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연은 다만 알지 못한 필연일 뿐
1989년에 가졌던 그의 레퀴엠(Requioem) 주제전은 데포르메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
으로는 구상화이다. 선과 색감은 다르지만 무언가 ‘루오’의 그림 같은 종교적 고발성과, ‘놀데’의 그
림에서 보여 지는 일렁이는 스산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이 전시 되었다. 2년후인 1991년
에 가진 개인전의 주제는 ‘우연의 지배-나의 생명’이다. 이 그림들은 대담하게지우고 강한대비의
색을 썼다. 사람의 형체는 검은 선과 윤곽이 잡혀 있으나 얼굴은 평면에 가깝게 처리되었다. 사람
이 전체 화면의 부분으로 줄어든 반면, 화면위를 가능한 한 색으로 이겨서 색이 차지하는 비중과
공간감을 훨씬 높였다. 그리고 나무통 같은 대담한 물건과 고추, 샘, 물기 있는 흐트러진 여체들에
선 육감적인 것이 느껴진다. 이 무렵 그는 음양의 문제와 기氣 그리고 성性의 본질적인 늪에 경도
되어 있었던 듯하다. 자연히 물감도 유체에 머무르지 않고 아크릴, 금가루 따위로 강렬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더욱 두드러진 붓자국은 그 자체가 이미 회화적이다.
그 전시회에서 무언가 자신을 얻은 듯, 같은해 10월 관훈에서 ‘우연의 지배-한국적 접근’이라는
주제 아래 다시 전시회를 열었다. 색이 더욱 대담해지고 강렬해졌다. 오브제도 도입되고 무엇보
다 흰색이 등장한 것이 이채롭다. 은유도 훨씬 구체화 되었는데, 여성을 상징하는 ‘샘’과 남성을
뜻하는 ‘고추’가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성性의 원색적 순수가 잡다한 문명의 번쇄함을 잘라 버리
기라도 할 듯 자못 저돌적이다. 이 당시의 그림에 ‘우연’의 요소를 자신감 있게 구사하고 있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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