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5 - 강화산의 작품세계
P. 275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6


























                                              간에게 알 수 있는 영역과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듯이, 그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과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우연은 미결정 상태에 있는 필연, 즉
                                              가장 강력한 질서인지도 모른다. 우연은 다만 인간 이상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일 뿐이라
                                              고 생각했으리라.


                                              어떻게 무엇을 그릴 것인가
                                                자양동 화실을 정리하고 광릉수목원 근처의 이곡리에 호젓한 집을 빌려 은거한 것이
                                              1991년의 일이였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그에게 많은 새로운 체험을 안겨다 주었다. 혼자
                                              밥을 끓여 먹으며 밤 3~4시까지 적막 속에서 자기를 잊으며 그림 앞에 참선하듯이 섰다.
                                              실제 그림 앞에서 백배, 천배도 해 보았다고 한다. 그것을 통하여 스스로 낮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의 본질도, 사람의 본질도 겸허에 있음을 깨달았다. 방에 군불을 지피는
                                              것도 차마 살아있는 나무를 벨 수가 없어서 죽은 나뭇가지나 밑둥치를 주어다 땠다고 한
                                              다. 그 무렵 그가 맞닥뜨린 ‘눈 덮인 포도밭’의 강한 인상을 결코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작
                                              품<우연의 지배-포도밭에서> 시리즈는 그때 받은 감동을 형상화 한 것이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몸통과 가지만을 앙상히 드러내고 있는 포도나무들은 새로운 실상으로 다가왔
                                              다. 그 여름과 가을의 풍성함은 어디로 갔는가. 차가운 달빛이 눈雪에 반사되어 낮과도 같
                                              았다. 하지만 그 뒤틀린 듯한 몸집은 상실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울고 있는 듯 느껴졌다.
                                              인간들은 그 탐스러운 포도송이는 즐기면서도, 그것이 맺기까지 겪어야했던 눈보라와 비
                                              바람의 아픔들은 까마득히 잊고 사는 것이다.


                                                <봄에 피어난 코스모스> 또한 어렵게 태어난 작품이라 한다. 가을에 피어나야할 코스
                                              모스가 봄에 핀 것을 만났을 때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한 송이 코스모스를 그리기위
                                              해 무진 애를 썼지만, 그 그림은 결국 가을에 가서야 완성되었다. 자연이란 그토록 섬세
                                              한 것인가.

                                                개구리를 만난 것도 자연 속에서였다. 태풍이 휘몰아치던 어느 비오는 날, 살려달라고 안
                                              간힘을 쓰는 개구리 두 마리를 보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절규하는 인간과
                                              도 같았다. 사실 개구리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풍요와 다산, 그리고 잡귀를 물리치
                                              는 길상吉祥 동물이었다. 연적을 개구리 형상으로 만든 것도 개구리는 배신을 모르고, 상
                                              서롭고,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본 개구리들은 현대 문명에
                                              지쳐있는 가련한 미물이었다.


                                                                                                               245
   270   271   272   273   274   275   276   277   278   279   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