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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유적
제6장 조선 후기의 오산 · 유물
김선희 |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전임강사
제1절 조선후기 개관
1. 행정구역의 변화
오산시가 속해 있던 수원부는 태종 13년(1413) 도호부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태종 16년(1416)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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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부 오산(烏山)에 머물렀다.” 는 기록과 세종 15년(1433)에 “대가가 수원부 오산원(烏山院) 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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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니 부사 조극관(趙克寬)이 와서 뵈었다.” 라는 기록을 통해 이미 행정구역의 면모를 갖추었던 것
으로 파악된다. 또한 조선 초기 지방 행정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오산을 포함하는 수원지역에 경
기도의 감영(監營)이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이 일대가 국가의 요충지로 인식되고 있던 것을 보여준다
고 할 수 있다. 수원은 도호부사가 외관으로 파견되고 동시에 경기도의 본영이 설치되어 관찰사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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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순행하는 중요 지역으로 도호부사를 보좌하는 판관이 파견되어 관리되었다.
조선중기 역시 오산 지역을 포함하고 있던 수원부는 속현이 많아 땅이 넓고 인구가 모여 있는 곳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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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경기의 근본이 되는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수원부가 행정구역의 변화를 통해 지역의 개편이
이루어진 것은 정조대에 이르러서이다. 오산시가 속해 있던 수원부의 옛 읍치는 현재 융건릉이 위치
한 화산(華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 수원부 읍치의 모습은 여러 사료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운금루기(雲錦樓記)」, 이색(李穡)의 「수원부객사지정기(水原府客舍池
亭記)」와 「규헌기(葵軒記)」, 신숙주(申叔舟)의 「수원부동루기(水原府東樓記)」, 성석린(成石璘)의 『독곡
집(獨谷集)』의 시문 등 명현들의 글을 종합해 보면 고려 말 수원부 읍치는 숭교리(崇敎理)였던 것으로
1) 『태종실록』 권31, 태종 16년 2월 20일(계미).
2) 『세종실록』 권60, 세종 15년 4월 22일(을사).
3) 『성종실록』 권292, 성종 25년 7월 8일(갑오).
4) 『선조실록』 권177, 선조 37년 8월 28일(병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