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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田愚, 1841~ 1922)가 가장 유명하지만 경기지역에서는 야우 서정순 및 근암 심의윤의 활동을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야우 서정순과 근암 심의윤의 역할은 재조명되

                  어야 할 것이다. 용인 명륜학교를 수원향교로 옮긴 것은 당시 수원향교의 장의와 도유사를 지냈던 심
                                          2)
                  의윤(沈宜允)의 역할이 컸다.  명륜학교를 이끌던 동전 맹보순은 서정순과 심의윤의 제자였고, 1896
                  년 궐리사 상집례의 동반수(東班首)로 강학에 참여하고 있다.
                    궐리사 복설과 궐리사 운영에 중요한 인물은 수원군 청북면 달성서씨의 야우 서정순 및 수원군 청

                  호면 원동의 청송심씨의 심의윤-심주택 부자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오산 궐리사 곡부공씨와 진위
                  군 은산리 봉화정씨 등과 연계되면서 경기남부의 고산 임헌회 학맥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들은 용인 경주김씨 김학조(金學祖)와 맹보순(盟輔淳) 및 용인 서리 박제순(朴齊純) 형제와도 연결된
                  다. 물론 주요한 활동근거지는 오산 궐리사와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던 용인 심곡서원과 용

                  인향교, 수원향교와 연결되는 인적 교류와 학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심 가운데 하나가 오산의 궐
                  리사였던 것이다.

























                                                    그림 2. 궐리사 강록(1911)


                    1894년부터 궐리사 도유사를 심의윤, 서정순, 심주택 등이 역임하며 궐리사의 중흥을 이끌었다. 특

                  히 심의윤과 심주택 부자가 주목된다. 오정(梧庭) 심주택(沈周澤, 1867〜1945)은 청송심씨 안효공파
                  로 1867년(고종 4) 4월 19일 청호면 원동마을 당촌에서 근암 심의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근

                  암 심의윤은 감역직을 제수 받았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다. 심주택은 1880
                  년(고종 17) 14세에 야우 서정순의 딸과 결혼하였다. 야우 서정순과 아버지 근암 심의윤은 고산 임헌
      오산시사
                  회의 문인으로 서로 왕래가 잦았던 때문이다. 25세 때인 1891년(고종 28)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16년간 주로 홍문관과 시강원에서 근무하였다. 시강원에서 영친왕의 사부로 활동하

      제           였으나 1907년 영친왕이 일본에 인질로 끌려가자 40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당촌 본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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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채에 서당을 개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당촌을 비롯하여 역촌, 우촌, 부산 및 고현에서 학동들이



    178           2) 김태근, 「용인의 유학 교육과 유교 문화 유적」, 『龍仁鄕校誌』, 용인향교, 2017,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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