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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가족공동체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내삼미동의 청동기시대 집은 A형
→B형→C형→D형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가구 구성원의 수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
여 가옥은 가구구성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작은 것에서부터 점차 큰 규모로 증축된 것도 있을 것이
지만, 이와 함께 처음부터 큰 규모로 축조한 것도 존재할 것이다. 선사시대 가옥의 개축, 또는 증축은
자주 확인되는 현상이다. 25)
그림 27. 오산 내삼미동 유적(경기문화재연구원 2011) 청동기시대 집터 규모와 화덕 수를 기준으로 한 주거 거주 형태 :
가옥 규모의 확대는 가구(세대) 구성원의 증가와 연동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대형 가옥이 주류이지만, 중기가 되면 집의 규모는 전기에 비해 작아진
다. 내삼미동 유적에서 확인된 중기의 집터 6기(2, 7, 8, 10, 16, 21)도 대부분 소형이다.(그림 28) 26)
29)
27)
28)
오산 가장동유적 (그림 29)과 궐동유적 (그림 30), 청학동유적 에서도 청동기시대 전기의 집터가
발굴되었는데, 이 유적들은 절대연대 측정결과를 통해서 볼 때, 대체로 기원전 10~9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산시사 24) 가구공동체의 구성원이 가족이 아닌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체적으로 동일 가옥에 거주한 사람들이 가족인 경우가 많다는 점
을 염두에 둔 것이다.
25) 이형원, 2009 『청동기시대 취락구조와 사회조직』, 서경문화사 / 이형원, 2012 「중부지역 신석기~청동기시대 취락의 공간 구조와 그 의
미」,『고고학』11-2..
제 26) 내삼미동유적의 장방형 집터 가운데 일부는 중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학계의 연구 성과로는 전기의 늦은 시기와 중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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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이른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27) 경기문화재연구원, 2008 『오산 가장동 유적-가장지방산업단지 조성부지내 시·발굴조사보고서-』 / 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11, 『오산
가장동 유적(Ⅱ)』.
28) 중앙문화재연구원, 2013, 『오산 궐동 유적-오산 세교2지구 택지개발사업내(1~5지점)-』.
40 29) 겨레문화유산연구원, 2013, 『오산 청학동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