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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명 성명 성별 나이 직업 학력 경력
사민당 홍숙자 여 54 기타 동국대 대학원졸 뉴욕총영사관부영사
일민당 김선적 남 61 기타 연세대 졸업 항일활동
한국당 신정일 남 49 기타 경북대 대학원 졸업 한얼교중앙회이사장
무소속 백기완 남 55 기타 독학 통일문제연구소장
제13대 대통령선거 후보별 전국ㆍ지역 득표상황
후보자별 득표수
투표율
선거구 선거인수 투표자수 민정당 민주당 평민당 공화당 계
(%) 기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전국 25,127,158 23,066,419 91.8 8,282,738 6,337,581 6,113,375 1,823,067 46,650 22,603,411
경기 3,270,127 2,962,014 90.6 1,204,235 800,274 647,934 247,259 5,621 2,905,323
오산읍 36,247 32,277 89.0 15,157 7,522 5,784 3,177 56 31,696
2) 제14대 대통령선거
제14대 대통령선거는 1992년 12월 18일 실시됐다. 이 선거는 민주화 이행 이후 두 번째 치러지는
선거였지만 그 정치적 의미는 매우 컸다. 이전 선거에는 신군부 출신 노태우가 입후보했다는 점에서
군부에 대한 민간통제가 확립된 이른바 문민선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부퇴진 이후에
치러지는 선거였던 만큼 대선 후보들이 드러나는 과정 또한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이었다.
그 출발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3당합당과 민자당 창당을 선언함으로써 여
권의 후보를 결정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시점이었다. 이질적인 정치지도자와 정치세력의 결합
으로 인해 여당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노태우의 민자당 탈당,
선거관리 중립내각 구성, 집권당 최초의 당내 경선 등으로 인해 여당 프리미엄의 배제와 관권시비를
불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김대중을 후보로 선출했고, 국민당도 정주영을 후보
로 확정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당 내부에 반김영삼 세력이 구 보수파를 중심으로 조직화되기
도 했다. 결과적으로 역대 대통령선거 사상 가장 많은 8명의 후보자가 나서게 되었다. 전국 투표율은
84.0%였고, 경기도는 82.0%, 오산시는 83.4%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오산시로서는 14대 대선이 매우 뜻깊은 정치축제였다. 1989년 1월 화성군 오산읍에서 오산시로 승
오산시사 격한 이후 최초로 갖는 대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경기도의 화성군에 속한 투표구였다면, 이
제 오산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투표는 중앙, 대원, 남촌, 신장,
제 세마, 초평 등 6개 동 13개 투표구에서 실시되었고, 전국 평균 투표율에 근접하는 고른 투표율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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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여주었다. 후보별 득표수는 전국적 분포가 순위 그대로 경기도나 오산시의 득표수에도 유사하게 나
타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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