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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명 성명 성별 나이 주소 직업 학력 경력 득표수
민주통일당 손도심 남 58 서울 남대문구 연희동 회사중역 서울대정치과 제3,4대국회의원 10,492 정치
무소속 서태원 남 55 서울 남대문구 불광동 회사고문 고려대 제5대 민의원 7,777 / 행정
무소속 홍기유 남 40 화성군 장안면 석포리 회사원 건국대 한국조명전무이사 7,220
한국인권투쟁위원회
무소속 김진구 남 54 수원시 세류동 사업 재학중퇴 5,083
인권옹호위원장
무소속 차진모 남 45 화성군 장안면 석포리 정당인 중앙대정외과 국회의원비서관 5,067
무소속 최영재 남 48 수원시 인계동 무직 대학중퇴 예비군중대장 2,897
무소속 공상진 남 37 서울 관악구 흑석2동 청년운동가 경희대정외과 한청협의회지부장 2,343
12. 제11대 국회의원선거
제11대 국회의원선거는 1981년 3월 25일에 실시됐다. 이 선거는 한국 현대정치사 최대의 소용돌
이를 거친 뒤에 이루어지는 제도적 정상화로 볼 수 있지만 극도의 긴장과 불안정 속에서 치러졌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18년에 걸친 군사독재
정권은 종식되었으나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민주화의 꿈은 사라졌다. 유신헌법에 따라 제10대 대통령
에 취임한 최규하는 신군부의 압력을 받아 하야하고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가 개헌
을 통해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후에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어 치러진 제11대 국회의원선거
에는 구정치인의 숙청 등 신군부가 주도한 정치규제와 정계개편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인들이 대
거 등장하였다.
개정 선거법에 따라 지역구 국회의원 수는 184명(92개 선거구), 전국구는 92명으로 모두 276석이
었다. 민정당과 민한당 등 11개 정당 529명, 무소속 105명 등 634명이 입후보하여 평균경쟁률은 3.4
대 1이었다. 전국의 총 선거인수는 2,109만여 명으로 이 가운데 1,640만여 명이 투표하여 78.4%의 투
표율을 기록하였다. 정당별 당선 의석수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의원정수의 54.7%인 151석을 차지
하였고, 민주한국당은 82석, 한국국민당은 25석을 차지하였다. 경기도에서는 12개 선거구에 총선거
인 279만 5,272명 가운데 212만 7,704명이 투표해 76.1%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경기도에서는 민주
정의당 12석, 민주한국당 10석, 그리고 신정당과 한국국민당이 각각 1석을 차지했다.
화성군과 수원시가 합쳐진 경기도 제3선거구에서는 총선거인 30만 8,744명 가운데 23만 2,067명
이 투표해 75.2%의 투표율을 나타냈고, 오산읍에서는 총선거인 2만 2,919명 가운데 1만 6,363명이
투표해 71.3%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의원정수 2명에 모두 8명이 출마하였고, 재선을 노리는 유용근
과 정치신인 이병직·박지원이 각축을 벌였다. 선거결과는 집권당의 지원과 조직을 앞세운 이병직이
1위로 당선되고, 유용근이 현직 국회의원의 이점을 내세워 2위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