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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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교동(細橋洞)
세교동은 작은 다리가 많아 잔다리, 세교리 등으로 불렸다. 정조(正祖) 13년(1789년)에 시봉면 세교
리가 등장한다. 지금은 세교 1동, 2동, 3동으로 구분되나 예전에는 큰말, 건너말(越村), 오리골로 세
마을이 합쳐져 세교동이 되었다.
1989년 오산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동사무소가 위치하여 세마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동이다.
3) 양산동(陽山洞)
양산동도 역시 오래된 마을이다. 원래는 마을 뒷산의 봉우리가 양산(洋傘)을 닮아 양산봉리(洋傘峰
里)였다. 그 후 양산골, 양산곡 등으로 불렸다.
정조(正祖) 13년(1789년)에 산성면 양산리로 불렸다. 1914년 4월 1일 오산이 수원군 성호면으로 될
때까지 산성면이었다. 1941년 10월 1일 오산면 양산리, 1960년 1월 1일 오산읍 양산리였다. 1989년 시
승격과 함께 세마동에 편입되었다.
독성산과 양산봉이 있어 경관이 좋고 공기가 맑은 최적의 전원마을이다. 현재는 한신대학교가 들
어서 마을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4) 외삼미동(外三美洞)
외삼미동은 삼미의 밖에 있는 마을이어서 밖삼미이다. 우리말로 ‘밧삼미’의 ‘밧’은 ‘밖’의 옛말이며
죽미령의 밖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뜻도 있다. 문시(文市), 뱅골, 명학을 묶어 외삼미동이 되었다.
5) 지곶동(紙串洞)
지곶동은 한지(韓紙)를 만들던 마을, 곶감을 생산하던 마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1789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산성면 지곶리(紙串里)이다. 이것으로 보아 지곶동의 이름은 조이
고지, 종이고지, 조꼬지 등에서 온 곳이 분명하다. 『한국지명총람』은 ‘지곶리’에 종이를 뜨는 조지소
(造紙所)가 이곳에 위치했다고 기록한다. 독성산 주변에 닥나무가 많아 이것을 이용한 한지를 생산하
는 마을이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감나무가 많아 곶감(串甘)을 생산하던 마을이다. 한지와 곶감을 합하여 지곶동이라는 의
미이다.
이 외 지곶동의 의미에 추가할 것이 있다. 그것은 지곶동이 황구지천을 향해 툭 튀어 나온 지형이
오산시사 라는 것이다. 우리말에 곶(串)은 바다 또는 호수 쪽으로 꼬챙이처럼 튀어나온 땅을 말한다. 독성산이
위치한 지곶동이 바로 그러한 지형이다.
정조(正租) 13년(1789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산성면 지곶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마을 뒤의
제
1 독산성과 더불어 역사가 오래된 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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