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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誌)』에 청호면(晴湖面) 갈곶리였다. 당시 청호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평택 53
군 진위면 갈곶리로 편성되었으나 원래대로 돌아왔다. 생활환경
마을 지명에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갈곶동의 지형이 곶(串)으로 되어 있어 갈
곶, 갉지라고 하였다. 그 둘은 마을의 지형이 높은 산맥이 뿌리를 내리고 길게 뻗어 나간 칡넝쿨처럼 / 지명유래
생긴 데서 칡 갈(葛) 자를 따라 갈곡(葛谷), 갈곶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그 셋은 예전에 한 스님이 마
을의 지형을 살펴보고 마을의 서쪽 뇌머리산의 허리가 잘리거나 산의 머리 쪽을 갉아 먹으면 마을이
가루(粉)가 되어 동네가 빈곤하게 된다는 말에서 연유하여 가루-가룻-갈곶으로 변했다고 전한다.
그 넷은 마을의 생김새가 삼태기 형태의 바깥쪽 모양이라 재산을 모으면 모두 새어 나가니 마을을 떠
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데 오산과 인접한 용인에 신갈, 구갈, 상갈, 하갈이 있어 사통팔달의 지명인 것으로 보면 ‘갈래
길’의 의미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바닷가에 면한 철(凸)지형에 쓰인 곶(串)으로 보면 갈
곶(葛串)은 아산만으로 나가는 진위천(장호천)의 포구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2) 고현동(高峴洞)
1995년 4월 20일 평택군 진위면에서 오산시로 편입된 마을이다. 오산시의 동남쪽 맨 끝 동네로 마
을 뒤 높은 산 밑에 위치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우천을 병합하여 평택군
진위면 갈곶리로 편성되었으나 원래대로 돌아왔다.
3) 원동(園洞)
원동이라는 명칭은 현재의 원 4통 지역으로 원래 이 마을이 원동이며 원동골이라고도 하였다. 예
전에는 이곳 동산에 갖가지 꽃이 만발하여 보기도 좋았고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의 원동은 원 3통 지
역을 중심으로 오산역이 생기면서 형성된 새로운 마을로 현재는 오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대원
동사무소, 각종 금융기관 극장 등이 밀집한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오산의 명동이라 부르는
곳이다.
4) 청호동(晴湖洞)
1995년 4월 20일 평택군 진위면 청호리에서 오산시로 편입된 마을이다. 예로부터 산과 숲으로 우
거진 마을에 호수(晴湖)가 있었는데 그 호수가 맑고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3. 남촌동(南村洞)
남촌동은 가장동(佳長洞), 궐동(闕洞), 오산동(烏山洞)의 일부, 청학동(靑鶴洞)을 포함하는 이름이
다. 오산천의 서쪽에 있으며 오산화성궐리사(烏山華城闕里祠)와 오산대학교(烏山大學校)가 위치한
다. 경부선 철길을 사이에 두고 중앙동과 남촌동이 동서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