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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정갈하게 씻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였다.
다음날 꽃가마에 외동딸을 태우고 몸종을 시켜 함께 산을 넘어 옹달샘을 찾아갔다. 그리고 샘물을
마시고 그 물로 몸을 씻으니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아가씨가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하는 기적
이 일어났다. 그 후 아가씨는 몇 번 더 옹달샘을 찾아 마시고 씻으니 몸이 깨끗이 완쾌되었고 그 후로
는 인동에서 그 옹달샘이 효험이 있는 약수로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고 전한다.
대갓집 아가씨가 꽃가마를 타고 그 샘터를 찾았다고 해서 근래까지 그 샘터를 ‘꽃가마 약수터’라고
부르며 오산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현재는 폐쇄되었다.
(10) 선바위
“옛날 노인네들한테 들은 얘긴데요. 어느 바닷가인지는 모르겠어요. 소금 파는 양반이 있었는데,
염전을 했나보죠. 그 양반이 조금 소문이 나쁘게 났나 보더라고요. 그러니까 뭐 가짜를 팔았는지, 오
산사람이. 계획적으로 한 거겠죠. 소금을 외상으로 사러 가서 오산 오면 선바위만 찾으면 모르는 사
람이 없다. 선바위에 와서 찾으면 된다 해서 소금을 외상으로 가져 왔다는 얘기죠. 그래서 소금 값을
받으러 왔는데 오산 와서 선바위라는 사람을 찾으니까 선바위라는 사람은 없고 그 바위를 알려 주더
래요. 그래서 가보니까 바위밖에 없어서 못 받아 간 거죠. 그런 얘기에요.”
노적봉이라고 하며, 노적산 정상 근처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아름답게 생겼고 모양이 세운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이 마을에 소금장수가 살았는데 지금의 원 2동인 밀머리에 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소금장
수는 인천에서 소금을 사서 배로 밀머리까지 싣고 와서 팔았다고 한다. 당시에 마땅한 이름이 없던
소금장수는 오산의 선바위라고 자신을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인천의 구두쇠 상인이 어찌나 짜게 구는
지 한 번 혼을 내주기로 마음을 먹고 소금 세 배를 싣고 오면서 대금은 다음에 주기로 약속하고는 오
산으로 와서 소금 대금을 보내지 않았다.
인천의 구두쇠 상인은 외상값을 가져올 것을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나서 오산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길을 물어 오산까지 찾아온 인천의 상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오산의 선바위를 물으니 마을 사람들은
어째서 찾느냐고 되물으니, 인천 상인이 소금 세 배 값을 받으러 왔다는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며 저
산의 정상에 있는 바위가 선바위라고 하였다. 인천의 구두쇠 상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선바위
만 쳐다보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근동에서 이곳 선바위는 소금 세 배를 삼킨 바위로 이름이
오산시사 났다고 전한다.
제 (11) 배만이[艤艇坪]의 전설
6
권
가장동 외곽 도로 삼거리 근처에는 배만이 산이 있는데 예전에 창원 유씨의 집안에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을 크게 무찌르는 공을 세웠으나 여러 번의 전투에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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