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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건강이 좋아진 것은 바로 구기자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옹달샘 옆에 있는 구기자의 뿌리 63
가 옹달샘에 닿아있어서 구기자의 효능이 옹달샘에 담겨져 있던 것이었다. 구비전승
(7) 애기바위 · 민속
여계산 정상부근에 있는 바위이다. 옛날 임진왜란 때 아기가 숨어 있는 바위를 톱으로 잘라 애기를 · 경기도당굿과
죽인 바위로 지금도 바위가 칼이나 톱으로 썬것처럼 한쪽면이 매끈하게 잘려있다. 이 바위에는 애달
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암동은 예전에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길지로 보였던 모양이
다. 임진왜란 때에 왜군이 금암동에 들어와 약탈을 하였다. 이때 왜장은 풍수에 밝은 사람이었는지 경기재인청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더니 큰 인물이 태어날 지형임을 알고 부하들을 시켜 젊은 남자와 어린 사내아
기를 모두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을 뒤져 마구잡이로 살생을 저질렀다. 그런 와중에 마을에 한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마침 아들이었다. 그러나 기뻐할 사이도 없이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일념뿐 / 성씨
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아기를 감추고 자신이 희생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는 일부러 임 · 인물
산부처럼 배에 바가지를 넣고 마을을 활보하였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서 왜병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왜장은 이 부인이 이미 어린애를 낳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부인에게 아기가 있는 곳을 물었으
나 말하지 않자 부인의 배를 칼로 자르게 하였다. 짐작대로 부인의 배에는 엎어 놓은 바가지가 나오
자 부인을 살해했다. 그리고는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했으나 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애
엄마가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산에서 들렸다. 왜병들은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큰 바위 밑에서 들려 왜병들이 바위를 치우려 했으나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
장은 부하들을 시켜 바위를 톱으로 자르라고 하였다. 톱으로 바위를 자르기 시작하자 아기의 울음소
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얼마 후 바위는 두 동강이 났고 그 안에서 선혈이 낭자한 아기의 시체가
나왔는데 아기의 어깨죽지에 날개가 있었다. 결국 왜병들은 마을의 아기들과 임산부를 모두 살해하
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애기바위의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왜군의 잔혹성을 말한다.
(8) 집안에 살구나무를 심지 않는 이유
우리의 민속 가운데 나무를 잘못 건드려 집안에 우환이 들면 그것을 ‘목살’이라고 했다. 목살은 경
을 읽어서 잡아내는데 그 때에 복숭아 가지가 쓰인다. 다음의 이야기는 바로 복숭아나무나 살구나무
가 어떻게 하여 집안에 깃든 나쁜 기운을 내치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목살은 쇠를 복숭아나무가지로 두드리며 경을 읽어서 잡아내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도투마리나 써
레를 두드리며 경을 읽어 잡아내기도 한다. 목살경의 내용에 대하여는 지곶동의 민요자료를 참고하
기 바란다.
제보자께서 이야기하시는 것은 복숭아나무나 살구나무가 어떻게 하여 이러한 용도로 쓰이게 되었
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