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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구전되어 전해오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또 민요는 민중의 생활을 노래한 단순한 노래의 차원을
넘어서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생산적인 노래라는 특징을 갖는다.
악보나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채 구비(口碑)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언제부터 불리기 시작했는지 정
확히 알 수 없다. '노동기원설'에 따르면 민요는 노동을 하면서 박자에 맞추어 소리를 내고, 이러한 무
의미한 소리에 선율을 얹어 부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설에 따르면 민요는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고 추측된다. 흔히 민요의 가능성이 있는 옛 노래를 추측하는 데 있어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
에 실린 제천행사에 대한 기록 중 '연일음주가무'(連日飮酒歌舞)라는 말을 토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한국 민족이 일찍이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그때 불려진 노래가 민요라고 가정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헌으로 남아 있는 옛 노래를 보면, 상고시대에는 『해동역사(海東繹史)』·『대동
시선(大東詩選)』등의 여러 책에 수록되어 있는〈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
洛國記) 편에 언급되어 있는〈구지가(龜旨歌)〉가 있다. 또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고구려의〈황조가
(黃鳥歌)〉,백제의〈정읍사(井邑詞)〉,『삼국유사』에는 신라의〈서동요(薯童謠)〉·〈풍요(風謠)〉·〈헌화가
(獻花歌)〉·〈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처용가(處容歌)〉 등이 실려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는 이전의 주술적 민요 형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체계를 갖고 있는데, 이제현의
『익재난고(益齋亂藁)』 소악부(小樂府)에 시 11수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에 있는 민요집 풍요선
에〈풍요(風謠 : 땅을 파고 흙을 운반할 때 또는 방아 찧을 때 부르는 노동요)> 등이 전한다. 이 시대의
대표적 민요에는 <가시리>가 있다. 조선 초기의 것으로는 강희맹이 채집한 참요(讖謠) 14수가 『증보
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전하고, 조선 후기의 것으로는 이학규가 채록한 경상남도 김해지방의 민
요가 있어 당시의 민요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조선 후기 이후에는 전국에 직업적인 소
리꾼이 생겨났는데 이들이 부른 민요를 흔히 통속민요라고 한다. 통속민요는 음악적으로 매우 세련
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창부타령〉·〈성주풀이〉·〈육자배기〉·〈아리랑〉 등이 있다. 그러
나 민요는 일제강점기에는 극심한 탄압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외래음악의 도입 등의 이유로 직업
적인 소리꾼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는 널리 불리지 않고 있다.
민요의 종류는 기능상으로 노동요·유희요·의식요·정치요 등으로 나눈다.
1) 노동요
각 지방에는 그 지방의 독특한 가락을 가진 노동요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노동요는 일의
리듬에 따라 박자를 맞추거나 흥을 돋우어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농사일이
오산시사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요를 통한 공동체의식의 고양은 생산활동에 활력을 주는 요인이 되
었다.
제
6 ① 농업노동요:한국 민족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기 때문에 농사일에 관계되는 노동요가 제일 많다.
권
〈모찌는소리〉·〈모내기소리〉·〈논매기소리〉가 대표적이며, 그밖에 〈장원질소리〉·〈벼베는소
리〉·〈볏단나르는소리〉·〈타작소리〉·〈방아소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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