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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지역의 시장체계를 형성하였다. 『동국문헌비고』 당시 화성 지역에는 3·8일 장은 존재하지 않았
으나, 인근 지역의 향시들과 시장체계를 형성하였기에 3·8일장의 부족을 해소할 수 있었다. 수원부
의 1·6일장인 읍내장, 안중장, 오타장과 3·8장인 오산장이 개설되었다. 1)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바꿔 버린 수원군 내의 동·리 이름이 매우 많았
는데, 당시 수원군의 행정구역은 현재의 화성시를 비롯해서 오산시, 의왕시, 그리고 안산시 일부를
포함하는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다. 1915년 1월 29일 조선총독부 경기도장관 히가키 나오스께는
“경기도 고시 제4호로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반월면(半月面)을 제외한 수원군의 동·리 명을 바꾸게
되는데 이 시기 변경은 너무 폭이 크고 획기적인 것이라 지명반란”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개편 전 동
의 개수 457개 동·리가 개편 후 255개 리로 개편되어 과거 조선시대 이래 존재하던 재래동 202개가
사라졌다. 2)
그림 1. 1914년 전후의 수원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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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사
제
5
권 1) 『화성시사 3』, 15~16쪽.
2) 『화성시사 9』, 1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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