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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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여백에는 戶口, 田結, 穀物, 軍兵, 建置沿革, 山川, 君名, 古蹟, 驛院, 書院, 佛宇, 土山
등과 방위를 표시하는 方面이 기록되어 있는데, 건치연혁 이후 토산까지는 일부 군현지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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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확인된다. 말하자면 지도를 중심으로 지리지를 결합한 형태이다. 그중 독산성은 수원부 지
도에서 확인되는데, ‘禿城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독산성에서 북서쪽에는 읍치가 위치해 있고
읍치와 독산성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가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독산성과 읍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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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하는 다리가 ‘洗南橋’라는 이름으로 강 위에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이 ‘세람교지’이다. 즉,
현재 터만 남아 있는 세람교는 해동지도 편찬 당시에는 독산성과 읍치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기
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備邊司印 朝鮮地圖(규16030)는 강원도와 경상도의 목차 부분에 備邊司라는 인장이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보관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으며, 1750년에서 176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든 지도는 方眼 위에 그려져 있고 그 크기가 가로×세로 4.2cm(20里)로 규격
화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전국의 모든 지도가 동일 축척에 맞게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 지도
의 가치로서는 方面의 모양이나 지리정보의 위치가 조선시대의 지도책 중에서 가장 정확한 모
습을 띠고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전의 지도들이 관념적인 측면이 강한 회화식 표현과
같이 모호한 표기와 차별을 두었다. 또한 표현 양식이 일률적으로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
문에 중앙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邑治·營·察訪驛·鎭堡·
烽燧·倉庫 등 7개의 동일 정보는 동일 기호로 표시하였다. 이외에도 驛站은 전국 공통사항으
로 표시하였다. 조선지도에서 독산성은 수원에 속해 있으며 禿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독
성산을 산 위에 성벽으로 따로 그려놓은 것을 보았을 때 이 당시 독산성의 산성으로서의 지위를
추정케 해준다고 생각된다. 독산성은 읍치와 柳川을 사이에 연결되어 독산성 주변을 지나 진위
로 뻗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독산성 북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표시된 洗南橋가 조선지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주요 도로가 柳川을 지나가고 있기에 강을 지나는 이 지점이 洗南橋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京畿附忠淸道地圖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함께 그리면서 월경지를 포함한 군현의 경계와 面의
정보까지 자세하게 수록한 드문 형식의 대형 지도다. 지도 오른쪽 위에는 약 13.0cm의 백리척
이 그려져 있는데, 축척은 약 310,000:1 정도다. 1776년(영조 52)에 尼城으로 변경되는 尼山이
개정 이전의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고 1776년 이후의 지명 변화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아 그
63) 서울大學校奎章閣, 1995,『海東地圖 -解說·索引』.
64) 지금의 황구지천(黃口池川).
62 한신대학교 대학원 한국사학과 고고학실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