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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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헌 및 고지도 조사



                      1) 문헌 조사   61)


                        문헌조사에서는 『禿山城 洗馬臺址 調査 및 修理報告』(경기도 편, 1982년)에서 다룬 문헌 이외

                      에 정조대에 편찬된 2종의 『水原府邑誌』와 1831년에 편찬된 『華城誌』 등 수원지역 읍지자료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독성산성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하였다.
                        1785년(정조 9년)경에 편찬된 『수원부읍지』는 ‘周回五里 城堞三白三里堞 高三丈 守堞軍十一

                      使令十四 衙前十三 知印九 軍牢四 婢子二’로 독성산성에 관한 사실을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는
                      데 성벽에 성첩을 축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791년(정조 15년)경에 편찬된 『수원부읍지』에는 권율장군의 승전사실과 사도세자의 臨御사
                      실, 1790년(정조 14년) 園行때 정조가 運籌堂에 임어하였던 사실 등 독성산성의 역사적 사실들
                      이 기록되어 있고, 독성산성에 설치된 山倉 26칸 규모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독성산성의 남

                      문인 진남루를 舊水原府官御의 외삼문으로 사용하였던 拱極樓와 함께 「樓亭」 항목에서 기록하
                      고 있어 독성산성내의 진남루는 문 위에 누각을 지은 형태의 문루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831년 편찬된 『화성지』에서는 月沙 李廷龜(1556~1635), 李雨臣(1670~1744), 李義豊,

                      朴綺壽 등이 지은 독성산성 記文을 정리하고 독성산성에 설치된 여러 시설물을 기록하고 있다.
                      『화성지』에 의하면 독성산성의 둘레가 1,010보에 4개의 門이 있었고 暗門이 1805년에 설치되었
                      는데 남문과 서문에는 문루가 있었다. 그리고 군사지휘부로 사용되던 총 167.5칸 이상의 관청

                      건물이 건립되어 있었다. 『화성지』에 기록된 독성산성의 관청건물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 1>과
                      같다.

                        정조대에 한차례 중수된 독성산성은 순조대에도 관청의 건립과 군기고의 개건, 진남루의 중
                      수가 이루어졌다. 독성산성은 본부의 중군이 예겸하는 별장아래 留鎭將軍 1명, 宮前別監 1명,
                      各倉庫監官 3명, 別軍官 6명, 城門將 4명, 哨官 5명, 衙前 21명, 通引 10명, 使令 7명, 官奴 7명,

                      官婢 2명, 巡牢 7명, 城門卒 4명, 山直 5명 등의 행정조직과 守城軍 2,226명 納米軍 1,941명으
                      로 편제된 군사조직을 갖추고 화성과 협수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성내에 126호, 성외 인근에 127

                      호가 거주하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61) 한신대학교박물관, 1998,『독성산성 지표조사 결과보고서-독성산성 내부를 중심으로-』



                      60  한신대학교 대학원 한국사학과 고고학실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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