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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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박동 등은 부산동과 오산동, 원동, 궐동을 포함하는 권역이다.
오산(烏山)의 지명 속에 보이는 까마귀는 오산의 상징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옛날 고구려는 바로 하늘과 연결하는 천손족을 의미하는 삼족오로, 삼한시대 솟대
에 보이는 세 마리의 새 중 하나는 까마귀로 이것도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성스
런 새였다. 바로 오산시의 까마귀의 지명은 바로 오산이 성스런 고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바로 오산시민의 의식이 높은 등급의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
다고 본다. 우리 오산시민들은 오산이라는 지명에 긍지를 가져야 하겠다.
1970년대만 해도 오산천은 맑은 물과 모래를 갖고 있었다. 이곳에서 모래찜질하며
모래성 쌓고 놀며, 고기 잡아 천렵도 했던 깊지 않고 얕지만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
던 곳이다. 오산시내 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이라면 오산천에서의 어린 시절
이 갖는 추억이 매우 강렬함을 이해할 것이다. 특히 오산천 주변 중에서 오산시민
회관(오산문화체육복합센터)과 오산종합운동장 자리는 수박과 딸기밭이 있었고, 과
수원 이외 자리에는 토끼풀과 파란 잡초가 빽빽이 자라나 염소를 주로 놓아 기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여름이면 여유롭게 풀을 뜯는 염소, 그 염소를 귀엽다고 어루만
지는 아이들, 일부는 괴롭히기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놀다 더우면 옆
냇가로 들어가 멱을 감으며 놀았다. 모래무지. 송사리, 붕어, 메기 등의 물고기 들
이 많았고, 특히 물이 맑다보니 거머리가 많고 물뱀이 가끔 떠다녀 기겁을 한 기억
을 그 당시 사람들은 갖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벌거벗고 놀았으며 모두 햇볕에 타 새까맸다. 겨울에는 썰매를 지치고 팽이
돌리기, 연날리기, 보름날엔 깡통돌리기 등을 하였다. 저녁 무렵이 되면 거의 모두
가 냇가에 빠져 신발과 양말이 젖고 발은 빨갛게 달아올라도 추운 줄 모르고 놀았
던 것이다. 물론 집에 가면 엄마한테 야단맞을 일로 걱정을 하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렇게 맑은 물이 1980년대 동탄 쪽 상류지역에서 가축을 대규모로 사육하면서
배설물을 마구 버려 1980년대 중후반이 되면 악취가 진동하는 썩은 하천이 되었던
것이다. 하천 정화작용의 상실이 가속화되는데, 이러한 상황의 가속화는 오산천 주
변에 제지 공장을 비롯한 다양한 공장들의 유치 정책의 가속화로 물을 사용하는 공
장들이 늘면 늘수록 깨끗한 물은 줄고 생활하수만이 흐르는 오산천이 되었던 것이
다. 지금은 생활하수를 분리 정화하여 하류 쪽에서 방류하지만, 그래도 일부 지천에
서 무방비로 유입되는 생활하수는 오산천의 오염을 가중하고 있는 것이다.
오산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오산천 주변에는 특별한 장소가 조
성되었다. 오산천 주변의 옛지명이나 장소를 알아보자.
*선둑(마을): 뚝방마을,
*마장터(마을): 말을 재우고 먹이던 마을-소시장이 있어 매매를 위해 재우고 먹이
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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