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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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도 불린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고고한 선비의 표상이며 사군자의 하나로 절
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오산은 농촌지역에서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오산 지역만의 특징을 갖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화장품 산업, 5G 등을 포함한 첨단 산업화도 진
행되고 있다. 도시의 자립도도 높여왔으며, 살기 좋은 첨단 도시로의 꿈을 성취시켜
가고 있다. 온 도시를 캠퍼스로 활용하는, 오산 지역 어디서라도 배움이 이루어지는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다. ‘학교 안 교육’과 ‘학교 밖 교육’이 균형을 이루는 교육도
시이다. 오산은 문화와 예술이 시민의 삶 속에 함께하는 품격 있는 도시이다. 오산
시민과 오산을 이끄는 리더들과 공직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사회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오산 지역은 민중들의 반외세, 반봉건의 민족운동과 계몽운동, 의병전
쟁으로 진행되며, 식민지 해방운동의 성격을 띤 교육운동, 사회운동, 청년운동 등으
로 계승되었다. 일제는 1900년 오산에서 경부선 철도용지 매수를 시작하였는데,
논, 밭, 산 소유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탈당하였다. 1902년 말이 되면 오산지역
까지 공사를 진행하였고,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군사상 필요에 따라 공사를 강행하
였다. 1904년 경부선 철도 각 정거장 내에는 우체사무와 전기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05년 1월 경부선이 개통되자 오산역은 근대화의 상징이면서 오산지역에 대한 일
제 침략의 거점이 되었다. 현재의 오산역사는 2002년 11월 28일 준공된 건물이다.
2005년 1월 20일부터는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7년 11
월 1일 오산역이 오산역과 오산시내외버스, 택시 환승이 가능하도록 오산역환승센
터 공사가 완공되었다.
1905년 6월에는 오산우편취급소도 오산역 앞에 문을 열었고, 우편저금과 집배사
무를 취급하였는데 이것은 결국 오산지역에 대한 일본 자본주의의 침략 통로가 된
것이었다.
신명학교는 1911년 당시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최초로 설립된 사립학교이다. 오
산의 청소년들을 모아 순수한 한국인 선생으로 하여금 신교육을 실시하게 한다. 그
러나 한국민족정신을 함양시키는데 교육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그 후 2년 만에 일
제의 민족교육말살 교육정책으로 인해 폐쇄되었다. 일본이 한국인을 위한 학교인
성호초등학교 전신인 오산공립보통학교가 1913년에 세웠다. 1923년 4월 4일에 외
삼미리 윤학영은 지역 유지들과 뜻을 모아 학동 85명으로 삼미의숙을 개교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자본이 아닌 우리 한국인이 세운 초등학교인데, 지금의 삼미초등학
교 전신이다. 1925년 4월 28일에 세교리 홍종각에 의해 광성학원이 세워졌다. 일
제의 감시와 탄압을 견디어 내고 광복 후 광성초등학교가 되었다. 1945년 8월 15
일 일본으로부터 광복 후 각 급 학교가 개설되기 시작하였는데, 1945년 삼미국민학
교 개교, 오산국민학교 개교, 1948년 오산중학교 개교, 1954년 오산고등학교 개교,
1955년 오산여자중학교 개교, 1962년 오산여자종합고등학교 개교, 1967년 화성초
등학교 개교 등 이후 각 급 학교들이 개교하여 현재는 오산대학교, 한신대학교 등
전 과정의 모든 학교가 개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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