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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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하고 급히 달려온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앞장서 죽미고개에 서고 한국군 제17연대
이에 따르니 한·미 연합작전의 서막은 열리다. 혈전 6시간 15분 피바다 이루고 화
선은 낙동강으로 이어지니, 한 품은 고혼 이곳에 잠드니 혈맹의 우의 어찌 잊으랴.”
이 전투에서 150여명의 유엔군 소속 미군이 전사하고 장교 5명, 사병 26명이 실
종되는 피해를 보았다. 오산지역은 1950년 7월 5일부터 9월 22일까지 2개월 18일
동안 북한 공산당에 의한 지배를 받았고, 9월 24일 퇴각하였다.
매년 7월 5일 장병들의 넋을 위로 하는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다. 기념비 건립일은
1982년 4월 6일이다.
이 기간 동안 희생된 민간인이 많다. 별도로 현재 이분들을 위해 위령제를 수청동
현충탑에서 매년 10월말 경 오산시에서 주관하여 올리는데 진행은 사회단체에서 맡
아서 한다.
오산 죽미령 유엔군초전비 전경
3. 오산 죽미령 전투 상황
잠시 6·25전쟁 당시 죽미령 전투 상황을 알아보도록 한다.
수원과 평택사이에 있는 경부국도선상의 오산지역은 유엔군의 주축을 이룬 미 지
상군의 선견부대가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한 곳이다.
1950년 6월 28일 유엔의 신속한 한국지원결정에 따라 일본 도쿄(동경)의 미 극동
군 총사령부가 워싱턴으로부터 미 지상군 투입에 대한 법적 승인을 받은 것은
1950년 6월 30일이다.
한국 전선에 투입하게 된 주일 미 지상군은 제7사단, 제1기병사단, 제25사단,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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