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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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의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었던 주요 배경으로는 풍부한 교육적 환경과 천도교
                  의 교세를 들 수 있다.

                    당시 수원군에는 수원공립보통학교와 오산공립학교를 포함하여 삼일학교, 삼일여학교, 진명학교
                  의 3개의 사립학교와 150여 개의 서당이 존재했다. 1913년 4월 1일 설립된 오산공립보통학교는 그 연

                  원은 1911년 설립된 오산리 최초의 사립학교 신명학교(新明學校)이다. 일제에 의해 1913년 폐쇄되고
                  오산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지만 존엄과 권리를 지키고자 했던 민족정신은 말살되지 않았다. 이는

                  1923년 윤학영 선생에 의해 설립된 삼미의숙(三美義塾)의 정신적 토대로도 이어지고 발현되었다. 또
                  한 1914년 수원교구와 남양교구가 합쳐지면서 수원대교구로 승격됨으로 인해 수원군 천도교의 교세

                  는 크게 확장되었고 이는 다른 면과 리의 천도교인들과의 조직적 협력을 가능케한 토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성호면 오산리의 만세운동은 초반에는 학생들과 천도교도들이 중심이 되었고 점차적으로

                  오산장에서의 농민과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오산지역 주민들 전반에까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4절    오산장의 현재와 미래



                    해방 후 많은 변화를 겪어 온 오산장은 현재 오산오색시장이라는 이름을 명맥으로 이어오고 있다.
                  현재 오색시장에는 350여 개에 달하는 점포가 영업 중인데, 이 오색시장은 2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 속의 오산장과는 시장의 위치에 있어 약간 차이를 보인다. 즉 조선 후기 개설된 오산장은 ‘싸전
                  마당’ 또는 ‘오매장터’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역사를 이어왔는데, 1980년대 이후 상권의 중심이

                                                      36)
                  현재의 오색시장 쪽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즉 원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장의 위치가 이동한 것
                  이다. 오산오색시장이 지금의 이름을 갖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쳤다.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오

                  산시장’이라는 명칭으로 전통 5일장을 이어오다 2010년 ‘오산중앙전통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
                  었고, 2013년 5월 오산중앙전통시장상인회는 시민설문조사를 통해 다시금 명칭을 ‘오산오색시장’으

                               37)
                  로 개명하였다.










      오산시사



                                                  그림 17. 오산장의 1999년 풍경
      제

      1                                                             자료 :  『사라지는 시간 경기도의 5일장』 경기문화재단, 2000.
      권


                  36) 남경식, 「오산장(烏山場)의 역사성과 변천」, 『오산학연구 Ⅳ』 오산향토문화연구소, 2018.
    152           37) 남경식,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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