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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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면의 고현리(高峴里), 청호리(淸湖里), 갈곶리(葛串里)가 오산시 대원동으로 편입되었다.                                              43
                    이러한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오산의 역사는 2천 년 이상이다. 금암동과 수청동, 양산동과 지곶동,                                        생활환경

                  오산천과 황구지천을 거느린 독산성은 읍치(邑治)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수원(구원)의 읍치는 독산성이었을 것이다.  2019년 1월 1일, 오산시는 시(市) 승                                      /  지명유래

                  격 30주년을 맞았다.





                  제2절    오산시 지명





                  1. 오산시의 지명 개요

                    지명 오산(烏山)은 독산(禿山)과 부산(釜山)에서 비롯되었다. 독산은 백제 온조왕의 치적에 등장하

                  고 부산은 고이왕의 활동에 등장한다. BC 8년 온조왕(溫祚王) 7월에 “왕이 독산책(禿山柵)과 구천책

                  (狗川柵)을 설치하여 낙랑(樂浪)의 침략을 막았다.” 238년 고이왕(古爾王) 2월에 “왕이 부산(釜山)에
                  서 사냥을 하고 50일 만에 도성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한다.
                    이 기록에 등장하는 독산과 부산의 순수한 우리말은 ‘독뫼’와 ‘가마뫼’다. 독산성(禿山城)의 독(禿)은

                  ‘쌀독’을 의미하고 부산동(釜山洞)의 부(釜)는 ‘가마솥’을 의미한다. 가마솥의 가마(黑)가 검을 오(烏)의

                  오산(烏山)으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이래 독산성은 영토방위를 위한 토성(土城)이자 쌀을 비축하던 곶창(串倉)이었다. 백제,
                  고구려, 신라 그리고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독산성은 쌀을 보관하던 사창(社倉)이었다. 그 흔적은

                  오산시 지곶동의 독산성(禿山城)과 화성시 양감면의 사창리(社倉里)에 또렷하게 남았다.

                    백제시대에 쌓은 독산성이 사창이었다는 것은 다음 몇 가지의 기록으로 증명된다. 그 하나는 독성
                  산 보적사에 전하는 쌀 두되 유래이다. 그 둘은 1592년 도원수 권율(權慄)이 쌀로 말을 씻은 세마병법
                  이다. 그 셋은 1760년에 사도세자 이훤(李愃)이 온행 중에 호위 군사와 독산성의 성민에게 쌀 20석을

                  풀어 대접하였다는 기록이다.

                    가마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검다’, ‘가마솥’, ‘쌀가마’, ‘숯가마’ 등이다.
                    ‘검다’의 가마는 곧 신성한 장소를 가리킨다. 검은색은 곧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르 황(黃)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가마솥’의 가마는 밥을 짓는 쇠솥을 가리킨다. 고이왕이 부산에서 사냥을 하고 50일 만에 도성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오산시 부산동에 수많은 군사들이 가마솥을 걸고 숙영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쌀가마’의 가마는 쌀을 담는 가마니를 가리킨다. 오산시 지곶동의 독산성과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
                  에 사창을 두었음을 의미한다.

                    ‘숯가마’의 가마는 밥을 하거나 대장간에 필요한 숯을 생산하는 가마를 의미한다. 백제 고이왕이 50

                  일간을 머물렀으므로 많은 숯이 필요하였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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