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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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초평동(楚坪洞) 59
생활환경
오산시의 남서부에 있으며 가수동(佳水洞), 누읍동(樓邑洞), 두곡동(斗谷洞), 벌음동(伐音洞), 서동
(西洞), 탑동(塔洞)을 포함하는 이름이다.
1724년~1776년, 조선 영조(英祖) 연간에 발간된 <팔도군현지도 수원부지도>에 초평면이었다. / 지명유래
1793년 정조(正祖) 17년에 발간된 호구총수를 보면 초평면에는 가사리(加士里)와 사오화리(沙五火
里)라는 지명이 나온다.
1881년 순조(純祖) 31년에 발간된 『화성지(華城誌)』는 초평면 14동을 기록한다. 수철리(水鐵里)·
누읍리(樓邑里)·타종리(他宗里)·마유동(馬遊洞)·신촌(新村)·모전촌(牟田村)·용란리(龍蘭里)·
서촌(西村)·여대리(余垈里)·내창동(內倉洞)·어은굴리(漁隱窟里)·대화촌(大花村)·궁기리(宮基
里)·어인포(魚仁浦) 등의 마을이다.
1894년 고종(高宗) 31년에 발행된 『기전 수원 영사례(畿甸水原營事例)』에 초평면의 호구총수가 2백
57호로 청호면보다 큰 면이었다. 마을 이름과 호구총수로 조선후기에는 초평동이 오산의 중심지였음
을 알 수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강점기에 성호면으로 통합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 승격과 동시에 옛 지명을 다시 찾았다. 초평동(楚坪洞)은 오산시의 전원 마을로
농·공 주거지역이 공존하는 동이다.
1) 가수동(佳水洞)
물맛이 좋고 마을 앞 오산천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정조(正祖) 13년(1789년)에 발간된 『수원
부읍지』는 초평면 가사리(加士里)로 기록한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샘골을 통합하여 성호면 가수동(加水洞)이 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 승격과 동시에 가수동(佳水洞)이 되었다. 오산천에 가까운 동쪽에는 공업용수
를 이용하는 공장이 들어섰고 오산천에 먼 서쪽에는 가수초등학교와 오산초등학교, 가수주공아파트
와 늘푸른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2) 누읍동(樓邑洞)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와우형(臥牛形)이라고 한다. 누읍동은 눕새골이라고도 하며 이것이 변하
여 누운소-누읍새-눕새로 구전되면서 누읍리가 되었다고 한다.
순조(純祖) 31년(1831년)에 발간된 『화성지(華城誌)』는 누읍리(樓邑里)로 기록한다. 이 기록에 의하
면 순조(純祖) 연간에 누읍리가 오산시의 읍치(邑治)로 판단된다. 조선시대는 관아가 위치한 읍치에
출입문의 누각(樓閣)을 두었고 고종(高宗) 31년(1894년)에 발행된 『기전 수원 영사례(畿甸水原營事
例)』에 따르면 초평면이 청호면보다 큰 면이었다는 것에 근거한다.
1989년 1월 1일, 시 승격과 동시에 누읍동(樓邑洞)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