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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유적은 마도면 석교리에서 발견되었는데 신석기시대 집터 26기, 야외 화덕자리 1기, 구덩이
16)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그림 19) 신석기 마을이 자리 잡은 곳은 해발 20~30m가량의 두 구릉이 북
서~남동방향으로 완만하게 이어져 있는 지형으로, 옛 지형으로 보면 유적 주변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두 개의 군을 이루며 각각 11기와 15기가 북쪽 구릉과 남쪽 구릉에 배
치되어 있다. 남쪽의 위쪽에 있는 군집은 규모가 큰 8호 움집을 중심으로 5~6채의 집이 광장을 둘러
싸면서 배치되어 있다. 집터는 대부분 방형의 평면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단 시설을 갖춘 일부 집터
는 원형이나 부정형을 띠는 경우도 있다. 규모는 한변의 길이가 3~4m인 것이 많으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18호 집터로 5.6×5.3m이며, 17호 집터가 3×3m로 가장 작다.
움집터 내부에서는 지붕을 세우기 위해서 땅을 판 기둥구멍과 취사, 난방, 조명 역할을 하는 화덕
이 확인되었다. 기둥구멍은 주로 모서리 부분에서 확인된 점에서 볼 때, 기본적으로 4개의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4주(柱)식 배치방식임을 알 수 있다. 화덕은 모두 집터의 중앙부에 위치하는데, 직경
35~80cm의 원형 또는 타원형의 형태이며 땅바닥을 4~18cm 정도 깊이로 파서 만든 것이다.
움집과 관련하여 기둥구멍과 화덕 이외에도 단 시설, 집석(集石)시설, 벽구(壁溝), 저장구덩이 등이
일부에서 확인되었다. 단 시설은 경사가 심한 사면의 상부에 2단 굴착하여 벽이 무너지지 않게 조성
한 것인데, 일부는 집안 살림에 쓰는 물건을 놓아두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되었을 것이다. 작은 할석
을 모아 놓은 집석(集石)은 움집 내부의 불씨 저장 또는 조리와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움집이
폐기된 이후에 만들어진 것도 있는 점에서 볼 때, 움집 밖에서 사용한 야외 조리시설일 가능성이 높
다. 일부 집터에서 확인된 벽도랑〔壁溝〕은 집터의 한쪽 벽면 또는 두 벽면에 붙어서 10cm 내외의 폭
과 깊이로 홈을 판 도랑으로 움집의 벽체와 관련될 가능성이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15호 집터는
남쪽 벽면에 있는 도랑 사이의 중간에 1m가량의 빈 공간과 기둥구멍이 있는 점에서 볼 때, 출입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빗살무늬토기인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이 주를 이루며 그 외에 단사선문+횡주어골
문과 종주어골문(縱走魚骨文) 토기가 있다. 석기는 갈판, 갈돌, 석부 등이 있으며 도토리와 조, 수
수 등 곡물류도 확인되었다. 석교리의 집터는 그 내부에서 출토된 목탄이나 도토리를 대상으로 하여
AMS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기원전 3,800~2,910년 사이에 존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17)
한편, 봉담읍에 있는 수영리유적은 집터 2기와 구덩이 1기가 조사되었는데, 해발 44m의 구릉 정상
부에 위치한 움집터 1기는 일반적인 움집터와는 다른 형태이다. 짧은 벽쪽에 돌출된 출입구를 두어 철
(凸)자 형태를 띠는 것으로 소위 ‘운서동식 집터’ 또는 ‘대천리식 집터’로 불리는 것이다. 집터의 규모는
오산시사 장축 12m, 단축 8m, 최대깊이 65cm, 면적 99㎡의 대형이다. 내부에는 중앙부에 타원형의 구덩식 화
덕이 위치하며 모서리 4곳에 기둥구멍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벽의 외곽에는 다수의 기둥구멍들이
배열되어 있다. 수영리 집터의 절대연대 측정 결과는 기원전 3,090~2,890년으로 밝혀졌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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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16) 중부고고학연구소, 2013, 『화성 청원리 석교리 유적』.
17) 중부고고학연구소, 2013, 『화성 청원리 석교리 유적』.
30 18) 중원문화재연구원, 2018, 『화성 봉담2보금자리지구 및 우회도로내 화성 상리·수영리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