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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매일신보 1919년 3월 31일자 기사
“3월 29일은 성호면 오산리(城湖面 烏山里) 장날이므로 만일을 경계키 위하여 수원경찰서로 경관
수십 인과 수비병 4명이 엄중히 경계하던 중 홀연 오산장 북편 쇠전머리에서 약 1백여 명의 군중이
소요하는 것을 경관이 제지하여 진정되었더니, 다시 하오 4시 30분경에 약 4백 명의 군중이 일어나
서 소요를 시하며 남편으로 갔다가 북편으로 가며 대혼잡을 이루었는데, 경관이 주모자로 인정할만
한 자 7명을 검거하였더니, 4, 5백 군중이 오산주재소 앞에 모여 만세를 계속하여 부르며 경관이 해
산을 명하되 더욱 듣지 않고 체포된 자를 방송하여야 헤어지겠다고 하는 고로 검거하였던 자 7명을
즉시 설유 방송한 바, 방송된 자들은 군중이 옹위하고 만세를 부르며 시장 북편으로 물러가는데, 이
소요에 경상자 3명, 중상자 1명을 내인바, 즉시 오산병원으로 보내었는데, 형세가 더욱 불온하여 당
지 경관주재소와 면사무소와 기타 내지인 가옥이 파괴되었다더라.”(매일신보 1919년 3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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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매일신보 1919년 4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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