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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산서는 8백 명의 군중이 모여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고 불온한 행동이 있었으므로 수모 151
자를 검거하고 해산케 하였는데, 민심이 소요하다더라.”(매일신보 1919년 4월 2일자) / 지명유래 생활환경
그림 16. 매일신보 1919년 4월 5일자
“수원군 오산에서는 29일 다수한 군중이 벌떼같이 일어나서 우편국 경찰서 주재소 면사무소를 음
습하여 맹렬히 폭행을 하였는데, 그 군중의 한 떼는 다시 함성을 지르며 내지인 집에 살같이 몰려가
서 돌을 던져서 11집의 대문짝과 판장, 기타를 파괴하고 자못 창궐이 심하여 동지는 일시 비상히 험
악한 형세이었는데, 헌병 경관 등의 분투를 인하여 마침내 퇴산케 하였더라. 이 소요를 진압키 위하
여 총을 놓았는데, 폭민 편에 사망자는 없었더라.”(매일신보 1919년 4월 5일자)
당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농업인으로서 이들의 나이는 20대에서 40대에 이
르기까지 다양했다. 표12는 주모자들의 나이와 직업, 주소, 이들이 받은 형을 정리한 것이다.
표 12. 오산리 3·1운동 주모자
이름 나이 직업 주소 실형
공칠보 36세 농업 수원군 성호면 궐리 159 태 90
김경도 34세 농업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 344 징역 1년 6월
김용준 38세 농업 수원군 성호면 금암리 궐석, 징역 6월
안낙순 44세 농업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 궐석, 징역 6월
궐석, 징역 6월에
유진홍 34세 농업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
집행유예 2년
이규선 25세 농업 진위군 북면 봉남리 282 징역 1월 8월
이성구 25세 농업 수원군 일형면 조원리 342 징역 1년 8월
정규환 25세 농업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 징역 1년
자료 : 이동근, 「오산지역 3·1운동과 항일운동의 상징 독산성」, 오산문화 vol.54,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