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2 - 제1권
P. 222
■ 금암교(다리)
금암동의 북쪽에서 흐르는 냇물과 서쪽 계곡에서 흐르는 냇물이 모이는 금암동 입구의 다리이다.
특히 여계산과 관련해서는 옛날 기생 이름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안장바위와 관
련해서는 이씨네 장수가 칼 형국의 산자락을 쥐지 못하고 안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는 이야기도 전
해 오고 있다. 마을에서 대성을 이루던 천안 전씨 족보에는 흠리(欠里) 정산(定山), 차리(次里) 상현
(上峴), 석산곡(石山谷), 도림산(道林山), 도덕현산(道德峴山), 아지락산(我芝樂山), 내삼미리(內三美
里) 주막곡산(酒幕谷山), 오산면(烏山面) 원리(園里) 선두곡(先頭谷), 청호면(淸湖面) 원당후산(元堂後
山) 마장평(馬場坪) 등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피나무재산, 도둑재고개, 사자골, 청량골, 감
주물 등의 지명에 대한 구술자료도 추가로 조사할 수 있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는 거펑이, 겁퍼이라
불리는 거평곡(去坪谷), 석산곡(石山谷), 노랑굴이라고도 불리는 노랑곡(老狼谷)의 지명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3절 수청동(水淸洞)
수청말이라고도 하였으며, 옛날부터 맑은 물이 흐르고 늘 솟는 샘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수
청동 내에는 수청 1·2·3동이 있다. 수청동의 의미는 마을 내에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불렸다고 한
다. 수청 1동은 수청동, 수청말이라고 불렸고, 2동은 독골, 독거동이라고 불렸다. 3동은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해서 박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수청 2동의 ‘독골’은 선비 한 분이 마을에 들어와
홀로 지내게 되어 ‘독거’, ‘독골’이라고 불리다 사람들이 점차 계속 들어와 살게 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이 마을에 제일 먼저 들어온 성씨는 합천 이씨와 곡부 공씨(수청 2동), 밀양 박씨(수청 3동)이
다. 공씨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20가구 이상이 이 마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거의 살지 않고 여러 성
씨가 모여 살고 있다. 원래 수청동의 중심은 경부선 철길 동쪽(지금의 내삼미동과 경계 지역인 화성
초등학교 부근)에 있었으나, 현재 수청동의 중심지는 물향기수목원 부근이다. 사람들이 옮겨 오게 된
까닭은 수청동 북쪽 산자락의 모습이 마치 죽은 아이를 염하는 엄마의 형상으로 생겨 아이들이 제대
로 자라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독골(마을)
오산시사 현재 대우아파트가 있는 일대의 마을로 독동이라고도 불렸으며, 윗독골(상독골)과 아랫독골(하독
골)이 있었다. 예전에 옹기를 굽던 곳이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치에 밝으며 인자하고 의
로운 사람이 홀로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제
1 후자의 지명을 전설로 삼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1899년에 문시면에 옹동(瓮洞)이 있고, 1914년 같
권
은 면에 독동(篤洞)이 있으며, 또한 어탄면에 독동(篤洞)이 나타나 모두 현재의 수청동을 가리키고 있
다. 문헌 기록으로 살펴보면 옹기를 굽는 마을이라는 뜻도 되고, 의로운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