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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독산(독뫼)과 부산(가마뫼)의 의미가 신비하게 연결된다. 독뫼에 쌀이 있고 가마뫼에 가마
                  솥이 있어 쌀밥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설명을 덧붙이면 오산은 수만 명의 주민이 함포고복(含哺

                  鼓腹)을 할 수 있는 터전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여 북처럼 부른 배를 두드리며 살아가는 명당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지도 <동여비고(東輿備攷)>는 수원과 진위, 독산과 부산, 동화역과 청호역을 다

                  음과 같이 표기한다.































                                                 지도 1. 동여비고의 독산과 부산


                    <동여비고>에 따르면 온조왕이 세운 독산책과 구천책은 지금의 독산성과 황구지천이다.
                    고이왕(古爾王)이 머물러 사냥한 부산(釜山)은 지금의 오산시 부산동이다.

                    백제 고이왕이 부산에서 사냥하였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그 하나는 어떤 일을 기원하
                  여 하늘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냈다. 그 둘은 사냥을 명분으로 군사훈련을 하였다는 의미로 해석된

                  다. 사슴 등을 사냥하여 하늘에 희생물(犧牲物)을 바치는 행위는 고대 제왕이 주관하던 제천행사였
                  다. 고이왕이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희생양(羊)으로 삼아 하늘에 기원한 일은 무엇일까? 미루어 짐작

                  하건데 오산시의 서쪽에 위치한 어떤 세력을 복속시키려던 것으로 판단된다. 마한 54국의 하나인 모
                  수국, 상외국, 원양국을 백제의 세력으로 흡수한 전략으로 보인다.

                    가마를 상징하는 釜(부), 墨(흑), 烏(오)는 성스러운 글자다. 견우와 직녀를 만남을 위해 하늘에 오
                  작교를 놓는 까마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 등은 하늘을 상징하는 신성한 새였다. 오작
      오산시사
                  교(烏鵲橋)와 삼족오(三足烏)에 오산(烏山)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오산시의 마을 이름은 무의미하게 바뀌었다. 우리 민족의 전통과 민
      제           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은밀한 소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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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우리나라에는 평(坪), 성(城), 원(院), 대(垈), 촌(村), 포(浦), 원(圓), 곡(谷), 누(樓), 교(橋), 창
                  (倉), 장(庄) 등과 같은 다양하고 유래가 깊은 지명들이 있었다. 광무(光武) 연간에도 오산시에는 신촌
     44           (新村), 평촌(坪村), 서촌(西村), 대화촌(大花村)이 있었고 어인포(魚仁浦)가 있었다. 또 궁대(宮垈),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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