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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를 두었다.
고종 32년(1895년)에 지방제도를 23부로 개정할 때 수원부와 남양부는 인천부에 소속되었다. 고종
33년(1896년) 8월 4일에 지방제도를 13도제로 바꿀 때 광주부, 개성부, 강화부는 1등(等), 수원군은 2
등, 여주군은 3등, 남양군은 4등이 되었다. 고종 34년 광무 3년(1897년)에 오산지역은 4개면으로 청
호면(晴湖面), 문시면(文市面), 산성면(山城面), 초평면(楚坪面)이었다.
일제강점기 1914년 4월 1일에 경기도 소재 면의 명칭과 일부 구역이 바뀌었다.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남양군은 수원군에 예속되었다. 이때에 오산지역은 수원군 산성면, 문시면, 청호면, 호평면, 성호
면이었다.
8. 대한민국시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관보(官報:서울대학교 소장) 제757호(대정 4년 2월 13일 자, 1915년)의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4호에 수원군 면내 동리의 명칭 변경 구역 통보가 실렸다. 행정구역상의
지명 오산리가 등장하는 것은 이때다.
성호면은 독동(禿洞), 궐리(闕里), 죽전(竹田), 궁대(宮垈)를 병합하여 궐리(闕里)로 통합되었다. 가
장동은 가장리로 변경되었다. 청학동은 청학리로 변경되었다. 서촌은 서리로 변경되었다. 누읍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가수동은 가수리로 변경되었다. 벌음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두곡은 두곡리로
변경되었다. 탑동은 탑리로 변경되었다.
오산 1동은 부산리로 변경되었다. 오산 2동과 3동을 합쳐 원리로 변경되었다. 오산 4동과 5동을 합
쳐 오산리로 변경되었다. 양산동은 양산리로 변경되었다. 서랑동은 서랑리로 변경되었다. 남서동과
지곶동을 합쳐 지곶리로 변경되었다. 문시면과 세교동을 합쳐 세교리로 변경되었다. 외삼미는 외삼
미리로 변경되었다. 묵암은 금암 4리로 변경되었다. 내삼미와 죽미를 합쳐 내삼미리로 변경되었다.
수청동, 독동, 남산동을 합쳐 수청리로 변경되었다.
일제 말기 1941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관보 제4427호 지방청 공문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26호
에 의하여 성호면(城湖面)이 오산면(烏山面)으로 개정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에서 대한민국이 광복되었다. 1949년 8월 14일 대통령령 제161호에 의
하여 수원군 수원읍이 시(市)로 승격되면서 수원군 오산면은 화성군 오산면으로 분리되었다. 1960년
1월 1일 법률 제1175에 의하여 화성군 오산면이 오산읍으로 승격되었다. 1987년 1월 1일, 화성군 동탄
오산시사 면 금곡(金谷) 3리가 오산읍으로 편입되어 은계리(銀溪里)가 되었다.
1989년 1월 1일, 오산읍은 오산시로 승격되었다. 중앙동(中央洞), 역촌동(驛村洞), 신장동(新場洞),
세마동(洗馬洞), 초평동(楚坪洞), 남촌동(南村洞)의 6개의 행정동으로 출발하였다. 1991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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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시 조례 제253호에 의하여 역촌동은 대원동(大園洞)으로 개칭되었다. 역촌동의 동명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주민들의 의사에 따랐다.
1995년 4월 20일, 대통령령 제14629호 시·군 자치구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으로 평택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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