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제7권
P. 18
7. 9 사간원, 수원판관 조발이 차음에 독산성의 수장으로 판관을 겸임했으나
직무를 살피지 못하고 아전 등이 온갖 작폐를 자행하므로 파직할 것을
건의
10. 10 형조판서 장운익(張雲翼), 독산성에서 저축한 미두(米豆)와 안성·양성
등에 저축한 미두를 경기감사에게 독산성을 지키는 군사 중 노약자와
우마(牛馬)를 징발, 이를 운반하여 군사가 이르는 곳마다 결핍되는
걱정이 없게 해야 한다고 왕에게 건의
12. 19 비변사, 수원의 전 부사 조발을 예전처럼 수성장을 삼아 조방장의 직임을
겸대시킬 것을 건의
선 조 32년(1599)(윤) 4. 19 정언 임수정(任守正), 독산성의 수성장 이여염(李汝恬)이 아병(我兵)을
찾는다는 핑계로 민간을 수색하고 뇌물을 받으며 공무를 빙자하여
작폐한 일이 많으므로 파직시킬 것을 건의
선 조 33년(1600) 4. 3 비변사, 독산성이 황폐되었으므로 방어사 권준(權俊)에게 피폐된 것을
일으키고 급한 변에 대비케 하기 위해 좀도둑에게 겁을 주어 두렵게
한다면 서울을 보호하는 데 유익할 것이라고 건의
선 조 34년 (1601) 3. 17 해원부원군 윤두수(尹斗壽), 수원은 기보(畿輔) 중에 가장 훌륭한 곳으로
무인이 1,000명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정병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독산성과 같은 요새가 있으므로 병영을 설치할 것을 건의
선 조 35년(1602) 12. 7 병조, 독산성에서 시재(試材)한 장사(壯士)가 월등히 뛰어난 인물이
아니면 새로 설치한 군영에 처음으로 경관(京官)에 보내어 시재토록 건의
왕의 명으로 부사 변응성(邊應星)이 성을 쌓고 관사 건립
선 조 36년(1603) 2. 18 왕, 남한산성을 수축한 후 독산성에서처럼 조련하여 수령을 택하여
지키게 하면 서울의 보장(保障)이 되고 밖으로는 제진(諸陳)을
공제(控制)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교
선 조 37년(1604) 8. 28 간원, 임진왜란 후 독산성 때문에 방어사를 두어 부사를 겸하게 하였으나
오산시사 일에 방해가 되고 민폐가 심하므로 재능과 명망이 있는 자를 부사에
제수하여 독산성을 살피도록 건의
제
7 선 조 38년(1605) 7. 6 비변사, 독산성과 강화에 비축해 놓은 화기를 낭청(郞廳)을 보내서
권 간심(看審)하고 가져오도록 계청하였으므로 도착되는 대로
별도로 차관(差官)을 선정하여 계속 들여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