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오산시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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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지역을  지나가는  천에  형성됐던  포구를  알아본다.


                    항곶진(亢串津)은  오늘날의  황구지천(黃口地川)에  세워진  포구이다.
                    황구지천의  원래  이름은  항곶천으로  내천(奈川)으로도  불려졌는데,  항곶진으로부터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구지천  본류의  기원은  수원  광교산으로부터  발원하는데,  광교산으로부터  연무동
                  을  거쳐  현  수원  시내를  관통하는  유천과  역시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괴목정교  아래
                  로  흘러나온  물줄기와  진목천의  물줄기가  정자동에서  만나  이루어진  영화천이  되고
                  이들  하천은  이의동  방향에서  흘러온  원천천과  대황교(大皇橋)에서  만나서  황구지
                  천이  되는데,  남으로  흘러  서탄면  내천리로부터  내천(奈川)이라  불리우고,  남으로
                  흘러내려  진위현  장호천과  만나  항곶진으로  내려가서  항곶천이  되고  항곶천  물은

                  다시  남으로  흘러내려  동청포를  거쳐  다라고비진(多羅高飛津)으로  내려간다.
                    다라고비진에서는  동쪽으로부터  흘러내려온  양성현  홍경천을  만나  합류하여  신흥
                  포를  거쳐  계두진으로  내려가서  아산만  바다로  들어간다.
                    『대동여지도』에는  서탄면  내천의  남쪽이자  영신속현(永新屬縣)의  서쪽에  항곶포

                  를  기록하여  놓았다.
                    항곶포는  조선시대  팔탄면과  양감면  사람들이  진위방면으로  건너가는  나루였다.
                    이곳은  아산만으로부터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일제  때까지  항곶진  북4km에  위치하
                  는  내천리까지  바닷물이  들어갔다.
                    새우젓배  등  많은  배들이  내천리까지  들어갔는데,  이곶  항곶포에도  1946년까지
                  1~2척의  배가  들어왔다  한다.  주로  들어온  배는  새우젓배로  여름,  가을에  들어왔고

                  가을에는  벼를  받고  김장새우젓을  주고  가는  물물교환을  하였다(*홍성관  증언,  67
                  세,  황구지리)  한다.
                    내천리  서쪽  3km  향남면  길성리에는  백제  초기  초축되어졌으리라  보이는  길성리
                  토성이  있고,  항곶포의  서쪽에는  서북  2km에는  창고의  둘레를  쌓은  사창리성이  있

                  으며,  서  2km에는  백제초기  길성리토성의  보조성으로서,  고려시대에는  양강처와  관
                  련된  성지로서,  조선시대에는  사창리성의  보조성으로서  사용되었으리라  보이는  소
                  근산성이  있다.  이들  성지는  아산만으로부터  내륙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던  해운의
                  편리와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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