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오산시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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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화성궐리사는 1792년(정조16년) 정조의 칙명(왕의 명령)으로 창건된 공자의
사당이다.
화성궐리사를 오르는 계단
정조가 오산화성궐리사를 당시 화성부 중규면 구정촌(현재의 오산시 궐동)에 창건
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정조는 1769년(영조38년) 영조의 미움을 받아 뒤주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
의 아들이다. 죄인의 자식이 되어 갖은 파란을 겪은 정조가 1776년(영조52년) 우여
곡절 끝에 조선의 22대 왕에 등극한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집권 초기부터 개혁정책을 통하여 정치적 기반을 닦고 왕권을
회복한 후 숙원이었던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가 있던 화산으로 옮겨 장차 능으
로 격상시키는 완전한 복권을 도모한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던 당시는 신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왕권이 쇄미했다. 이미 서
울은 노론 신료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론 일당 세력에 다른
당인 세력이 대항하기는 역학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고, 이러한 상황을 전환시키기
위해 교통의 요지로 손꼽히는 수원을 신도시의 거점으로 정하고 새로운 왕권의 강
화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을 실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의 호응이었다. 정조가 믿
을 수 있는 세력은 백성의 힘과 유림뿐이었다. 정조는 선대의 탕평책을 계승하고,
개혁의 명분으로 학문을 앞세우는 정치를 하며,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바꿔가는 길을 선택한다. 서울에 버금가는 신도시의 개창 필요성은 이러한 왕권 강
화책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정조가 제2의 왕도격인 신도시를 현 수원시에 건설하여 군사와 경제의 강화를 도
모하여 정치적인 힘을 키우고자 했다면, 현 오산시 궐동(당시 중규면)에 공자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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