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오산시역사문화
P. 87

*변응성선정비(邊應星善政碑)






                      변응성선정비(邊應星善政碑)는  오산시  지곶동  534-85에  소재하는  시대는  조선  후
                  기로  추정한다.  오산시  향토문화유적  2호로  지정되어  있다.  방부원수(方趺圓首)형  비
                  석으로  재질은  화강석이고,  1기는  143×62×23㎝(높이×폭×두께)  이며,  대석은  98×60이
                  다.  명문은 앞면에 防禦使邊應星善政碑(방어사변응성선정비)이고, 뒷면은 명문이 없다.
                    변응성(邊應星,  1552~1616)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1552년  3월  29일  부친  변협(邊協,
                  1528~1590)과  모친  화순최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기중(機中)이다.  부친은  무과에
                  급제한 자로, 1555년(명종 10)에 일어난 을묘왜변에서 해남현감으로서  왜선  600척을  격퇴하였
                  고  1587년(선조  20)에는  전라우방어사로서  녹도·가리포의  왜구를  격퇴한  공적이  있는  인물
                  이다.
                    변응성은 1579년(선조 12)에 2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장단부사  등을  역임
                  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통정대부(通政大夫)  강계부사(江界府使)로  평안북도  북동부에
                  있을 때  부친상을 당해 관직을  떠나 시묘살이를 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주부윤에  제수되었는데,  임명  전에  경주가
                  왜군에게  점령당해  부임하지  못하고  경상우도수사(慶尙右道水使)가  되어  왜군을  격퇴하였
                  다.  이천부사가  되어서  여주  목사  원호(元豪)와  협력하여  남한강의  마탄(馬灘)에서  왜장  모
                  리 가쓰노부, 아키즈키 타네나가  등의 적을 섬멸하였다.
                    이듬해  1593년(선조  26)에  류성룡의  천거로  경기방어사(京畿防禦使)에  제수되었다.  이후
                  광주(廣州)·이천·양주(楊州)지역에  출몰하는  토적(土賊)을  토벌하였으며,  한강  상류  용진
                  (龍津)에  주둔하면서  승군(僧軍)을  동원하여  목책을  구축하고  병졸을  훈련하였다.  1596
                  년(선조  29)  이몽학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용진과 여주  파사성을 수비하였다.

                    1602년(선조  35)부터  경기방어사  겸  수원도호부사로  제수된  변응성은  부민을  모아 독산
                  성을 쌓고 도량을 깊이 파는 한편 궁노, 석차, 포화, 기계 등을 설치하였다.  또한  장정  오백인
                  을  모집하여  관군을  삼아,  적병  침범에도  성을  굳게  지켰다.  광해군  대에는  훈련도감  대
                  장,  한성부  좌윤(左尹)까지  승진하였다.
                    화강암  재질로 된  방부원수(方趺圓首)형의  비석으로  폭  62,  두께  23,  높이  143㎝이다.  전면에
                  ‘방어사변응성선정비(防禦使邊應星善政碑)라  각자(刻字)되어  있고,  건립연도  등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선정비는 본래  독산성 밖  서쪽 주차장  입구  근처에 있었으나, 독산성  보수공사
                  때 주민들에  의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변응성과  독산성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 『대동지지(大東地志)』 수원부(水原府)
                       -  독성산성은  수원부의  남쪽  삼십리에  위치하고  있다.  선조  25년  수축한  고성으로  정
                        조  20년  개축하였다.  둘레는  일천  팔십보이다.  문은  네  개다.  독성에는  파총별장  1

                        인과 유진장 1인이 있다. 선조  35년  부사  변응성이  수축하였다.
                    • 『화성지(華城志)』 산성(山城)

                       - 독성(禿城) :  부사 변응성이 축성하였다는  기록 존재



                                                         -  87  -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