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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원삼국시대의 오산 1)
이남규 |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제1절 머리말
초기철기시대 말기에 한무제(漢武帝)의 침공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이 한사군의 영역이 되고 남쪽은
진국(辰國)을 거쳐 마한·진한·변한이 병립하는 양상이 되었다. B.C. 108년을 경계로 한 이러한 급
변과정에 비중국적 성격이었던 한반도의 선사문화는 한제국의 영향권 내에서 급진적으로 한화(漢化)
되어 가면서 고대사회로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낙랑지역에 중국식 분묘와 각종 기물들이 대거 유입되고 그 영향이 한반도 동남부지역에
일찍부터 미치게 되지만 서부지역인 마한의 경우는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의 유적이 제대로 확
인되지 않고 있으며, 오산지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오산을 포함한 한강유역권 서부의 일부지역에 기원전 1세기 유적이 존재하기는 하나 극히 드물게
확인되고, 토기와 철기 중심의 부장품을 갖는 분묘가 크게 증가하는 것은 기원후 2세기 중반 이후로
보여진다.
이처럼 문화적 단절양상이 보이는 시기 직후인 기원후 2세기 중반 이후 유적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
과 관련하여, 그 주민의 출자(出自), 문화의 계보, 편년 및 지역차 등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
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여튼 기원후 2~3세기의 기간 동안 오산지역의 마한세력은 주변지역과 연동되어 사회경제적 성
장을 보이다가 점차 백제의 영향권에 포함되면서도 이 지역의 특징적 문화를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유
오산시사 지했던 점에 특색이 있다.
그러한 역사 가운데 기원후 3세기까지의 오산지역 역사문화 양상과 추이를 주변지역의 상황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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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1)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하겠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고고학계에서는 기존의 ‘삼한시대’란 시대구분용어 대신 이 시대용어를 사
용하게 되었다. 그것은 ‘삼한’은 마한·진한·변한의 남한지역 집단만을 의미하여 고구려지역이 제외되어 있다는 문제에서 제기된 것이
었다. 이후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를 철기시대라고 명명하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하고, 영남지역에서는 여전히 삼한시대라는 용어
를 사용하는 연구자들도 있으나 본고에서는 한국고고학회의 입장(한국고고학회, 2010 『한국고고학강의』, 사회평론)을 따라 이 시대구분
58 용어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