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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적 물질문화를 시차를 두면서 직간접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특히 철기의 본격적인 사용단계로
들어서면서 경제력과 군사력이 크게 강화되는 가운데 내적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
에 정치적 자각이 싹트면서 고대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추동력을 주체적으로 함양해 나아갔던 것으
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이 남한지역 전체에서 동시에 전개된 것은 아니었고, 상당한 지역차를 보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대구-경주-김해-창원을 잇는 영남권의 동남부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부
터 토기-철기를 부장한 목관묘 조영집단이 성장하다가 기원후 2세기에 목곽묘 단계로 이어진다. 하
지만 남한의 서부지역은 그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 지역은 전북-충남 일원을 중심으
로 초기철기시대 문화가 발달하였었으나 서북한에 한군현이 설치된 이후에는 이를 잇는 문화가 단절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8)
오산시사
제
2 그림 1. 경기지역 마한 분묘의 지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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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8) 이남규, 2005 「韓半島 西部地域 原三國時代 鐵器文化-地域性과 展開樣相의 特性-」 『원삼국시대 문화의 지역성과 변동』, 제29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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