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성전에서 주신 3가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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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주이고, 두 번째 내 주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주입니다.
즉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주는 어떤 차이도 없으며, 똑같은 권세와 자격을 가진
두 분의 주, 두 분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 주, 구원자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7절>“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다윗은 그리스도를 나의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죽은 후, 700년이 지나 태어나셨으며,
다윗의 24대 후손쯤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통해 보니까, 700년 후에 자신의
혈통으로 태어날 예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았기에, 그 예수를 주라고 불렀던 겁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계시로 보여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지나쳐, 성경에서 말씀하는 메시야를 정치 경제적 메시야로 왜곡시켜 믿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현대에 들어와 많은 신학들이 생겨났습니다. 해방신학, 자유주의신학, 토착화신학, 종교다원주의신학,
여성신학, 사회복음주의신학등...이러한 신학은 기존 정통신학이 보지 못했던 어떤 면을 보게 한
공헌은 있지만, 이런 현대신학들의 결정적인 오류는 예수님을 어떤 상황적 범주(정치, 사회, 여성,
억압, 해방, 민중등) 안에 가둬버리고, 그 틀로 예수님을 보되, 틀에 맞지 않으면, 예수님을 왜곡시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형적인 메시야관, 변질된 구원론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겁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메시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구원주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요, 장차 심판하러
오실 심판주입니다. 이 믿음을 빼앗겨선 안됩니다. 누가 유혹하고 위협해도 이 믿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말씀은 서기관들을 삼가라는 말씀입니다(38-40절). 이 말씀은 모든 서기관들을 삼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도 신실하고 경건한 서기관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부류의
서기관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서기관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경건을 사람에게 보이고, 겉으로 드러내려는 영적 외식주의자를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외식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외식이 바로 영적 외식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도나 회개, 구제나 선행도 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드려져야지,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주의에 사로잡히는 순간, 신앙의 초점이 사람이 되고, 사람중심, 사람 눈에 좋게 하려는
인본주의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지,
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거나 외식주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시장에서 문안받기를 좋아하는 서기관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만이 아니라 대중 집회 장소, 사람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그러기에 시장에서 문안받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사람만나는 것을 더 좋아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크게 생각하며, 인기위주로 사는 사람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또한,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관심없고, 자신의 이름과 명예와 권위에 연연하며, 존경받기를 바라는
서기관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외식주의, 인기 영합주의, 인본주의,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은
비단 서기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경계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방심하면 어느새 우리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