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전시가이드 2021년 7월 이달의 작가 고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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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화 선생의 작품초대전 ‘옛 이야기+꿈·아리랑’을 축하하면서....
창작민화연구가/화가
설촌(雪村) 정하정
조선의 전통적 예혼(藝魂)을 품은 여류 현대미술가가 나타
났다. ‘어느 날 무심코 천년의 색으로 물들인 전통침선의 옛 향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 기에 마득하여 수집한 그 세월이 이젠 일상이 되었다. 서양
려시대를 찬란하게 빛냈던 인위(人爲)의 미(美)를 멀리하고 의 퀼트나 십자수에 밀려 잊혀져가고 있는 전통규방공예 조
그 대신 무위(無爲)의 미(美)를 매우 중시하였었다. 그러다 각보에 남다를 애착을 갖게 된 것은 한 땀 한 땀 조각에서
보니 도자기나 그림들의 외형이나 구도가 디테일보다는 즉 보이는 작위적이지 않은 무심한 손의 움직임으로 빚어내는
흥적인 자유미로 마무리했음을 보인다. 그래서 조선 막사발 추상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모시, 삼베, 광목 등의 보
등의 제품들을 한 쪽으로 일그러진 모습이 또 다른 멋으로 푸라기를 모아 마름질한 시접 사이로 바늘을 넣어 손끝에서
드러나는, 당시로서는 아이러니한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했 한 땀 한 땀 담아온 침선은 모자람도 더함도 한결같은 마음
고, 그런 막사발 등은 이웃 나라로 들어가 그 나라의 보물로 에 실어 그윽한 여운으로 이어진다. 조각조각에서 배어나는
정해지기도 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념으로 그리는 그림 갖은 색의 짙고 흐림에 따른 쥐대기로 바람(Gradation) 효
까지도 인위적 표현인 ‘그린다’보다는 자연원리(우주적 섭 과를 살리기도 하고, 그 사이를 홈질로 드러내 모양을 내고
리)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친다’라고 표현했다. 그 마감도 한다. 자유의지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머릿속에 저
래서 사군자 특히 난(蘭)이나 산수화 등은 그리는 게 아니라 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여울에 가린 의미의 세계를 열어젖
치는 것이다. 참고로 양 무리를 기르는 것 역시 자연(우주) 히는 느낌으로, 갖은 오브제로 든 속살을 충실하게 채워 마
의 기운을 대거 활용한다는 이유에서 ‘친다’고 했고, 상대적 음의 깜냥으로 헤아려 본다.’
으로 돼지처럼 인위적으로 제한하여 키우는 것은 치는 것이
아니고 ‘먹인다’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이렇게 지루하게 설명 작가노트에서 엿보이듯이 고금화 작가는 마음속에 예의 조
하는 것은 오늘의 작가 고금화가 다름 아닌, 위에 설명한 조 선 여인들이 품었던 제작의지 그대로를 끌어안고서 저들과
선의 대표적 예혼(藝魂)인 ‘치는’ 방식의 작업으로 우리에게 동일한 마음앓이를 즐기며(?) 창작에 임함을 알 수 있다. 또
예술적 쾌감을 불어 넣어주는 예술가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 한 편으로는 자신의 선배인 조선 여인들의 정신이 서양의
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금화는 우리나라의 큰 유사한 문화 때문에 그 인기가 뒤질세라 걱정하기도 한다.
자랑거리인 민화를 조선의 무위적 예혼(藝魂)을 활용하여 ‘작위적이지 않은 무심한 손의 움직임으로 빚어내는’이라
현대화시키는 작가인 것이다. 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그녀는 분명히 조선의 ‘무위
자연론(無爲自然論)’을 향한 지극한 동경심을 나타내고 있
잠깐 그녀의 작업 노트들 중의 두어 곳을 들여다보자. 다. 이는 ‘자신은 조선여인의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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