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전시가이드 2022년 5월호
P. 53

미발표작 200여점, 다차원을 끌어안은 추상회화
            경상남도 거창에서 출생한 작가는 가야문화에 대한 관심과 한국적 미감의 결
            합을 사각의 모티브 속에서 발견한다. 가야토기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사
            각의 투각형상들은 전통구상을 조각에 접목해온 작가의 글로벌한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2010년 아트링크에서의 개인전이후 조각에서 평면으로, 구상에
            서 추상으로 전환한 작가는 당시 개인전에서도 수천 장의 평면드로잉과 집모
            양의 구조물에 오방색을 담은 기하학적 형상회화를 발표했다. 1990년 이후 2
            년마다 연 10회의 개인전들은 쉬지 않고 변주해온 작가의 고민과 만나 조각
            과 다른 “평면 위에 조각하듯 얹어낸 건축적 추상양식”을 탄생시켰다. 작가의
            납작해진 부조는 조각에 바탕 한 페인팅이자 평면회화로 구현된 조각이다. 사
            각의 레이어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순간 자동감각(즉흥)에 의한 유쾌한 시
            각이 창출되는 것이다. 배삼식의 큐브들은 갈고 닦아내어 획득한 인내의 형        에 대한 실마리를 “나 자신을 무(無)의 형태로 변형시켜, 아카데믹한 시선에
            상일수도, 집터와 어우러진 안식처일수도, 혹은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스마트       서 탈피한 직관적인 논리이자 진정성 어린 순수한 창조물”에서 찾는다. 작가
            폰 어플들 이른바 인터넷으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한국적 정서의 근간일 수도        에게 새로운 미술의 얼굴은 “추상이라 해도 단순히 현실적 감각세계를 거부
            있다. 원고지의 선적 배열로부터 출발했다는 작가의 즉흥적 모티브는 10여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감성으로 변화하는 세상과 대화해야 한다.”는 메타
            의 준비과정 속에서 원고지에 써내려간 아름드리 시(詩)처럼 조화와 평안을        가능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순수감정의 주관성은 20대 초 밀턴 에버리
            획득한다. 흡사 휴대폰 어플의 배열 같은 형상들은 무작위적 창작행위 속에        (Milton Avery)를 스승으로 삼았으나 거의 독학수준에서 대상을 절제한 로스
            서 저절로 터가 되고 길이 되는 ‘자생적 추상’의 과정을 보여준다. 허버트 리     코의 변화과정과도 유사하다. 많은 단색화 화가들이 스며들 듯 내면으로 들
            드(Herbert Read, 1893-1968)의 언급처럼 모든 미술의 근간은 추상이다. 작  어가 ‘수행하는 과정’에 빠져드는 것과 달리, 배삼식의 추상은 다이나믹한 충
            가 스스로 터득해온 ‘아류 없는 독창성’은 어찌 보면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부     만의 시대를 차분한 어조로 읽어내는 관찰자의 시선을 견지한다. 작가에게 담
            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론이 있는가 없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즘을 하자”는 것이 아닌, “생각을 하
                                                            고 무엇인가를 창출하는 현 시대”의 고민을 작품 안에 녹여내기 때문이다. 스
            풍요를 담은 ‘사각의 가능성’                                페인 유학시절(ESCOLA MASSANA)에 겪은 구상조각의 매너리즘은 한국적
                                                            인 재료를 좇는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난 ‘현(現) 시대와의 대화로서
            배삼식의 추상은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의 ‘규정적 사각’  구축해낸 한국정서의 표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어찌 보면 배삼식의 언어들
            과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분방한 사각’을 상생시켜 조합한 듯  은 단색화의 바탕이 되어 준 전(前) 세대가 겪은 추상화가들의 순수한 질문들
            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정신성에서는 한국적 감각을, 조형성에서는 절대        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성과 자율성을 풀어낸 유쾌한 색면 부조를 떠오르게 한다. 배삼식은 ‘사각형’


                                                                                                       51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