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전시가이드 2023년 9월 이달의 작가 이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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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전시 보도 자료는 cr ar t1004@hanmail.ne t 문의 0 10-6313- 2 7 4 7 (이문자 편집장)
무위의 풍경2 087, 90.9x72.7cm, 한지에 옻칠 금분 무위의 풍경2096, 100x80.3cm, 한지에 옻칠 금분, 2023
보편자가 저절로 현현하는 자유(自由)의 미학 지되는 한 존재의 본래성인 자연은 드러나지 않고 유한한 시간과 공간
이러한 자현의 예술적 형상화는 서구의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크롬, 추상 과 인간의 틀 안에 한정되고 고정되기 마련이다. 현대 예술은 기표와 기
표현주의, 일본의 모노하와 한국의 단색화 등의 현대 추상미술과는 뚜렷 의를 구분하고 상징이나 의미를 소통하는 내용 대신 매체의 순수한 특성
하게 대비되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현대 미술의 흐름은 포 이나 사물의 고유한 물성을 드러내는 형식에 주목하면서 작가의 개성을
스트모더니즘과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구상에서 추상으로 전환하는 거세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을 전제한
과정에서 대상과 분리된 색채와 형태가 다양한 서사와 은유와 상징 등이 채 그 경계를 넘으려고 한 의도적 노력으로서 개별자의 미학에 갇혀 있
제거된 채 순수한 추상적 형식을 통해 작가의 주관적 의도가 빚어내는 의 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이형곤 작가의 <무위의 풍경 2>는
미와 내용을 비운다는 점에서 주관적 의도를 비우는 무아와 객관적 대상 현상적 개별자가 아니라 존재의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근원을 통찰하는
을 넘어서는 무상을 실현하려고 했다. 작가의 개성을 배제하고 사물의 물 자연(自然)의 영성, 자현(自現)의 예술, 자유(自由)의 미학으로 구성되는 ‘
성(物性)에 대한 관심을 추동하며 특정한 모듈의 패턴을 반복하는 수행 삼자’(三自)의 보편적 영성 예술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다. 내
적 몸짓을 선보이면서 작가와 작품과 감상자, 예술적 작품과 일상적 사물 가 존재한다는 의식이 현상적 개별자가 궁극적 보편자임을 자각하는 문
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삼자의 상호작용을 부각시켰으나, 작가의 개성이 이다. 그 문을 열면 작품을 계기로 창작과 수용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되는
사라지고 작품이 지닌 의미를 거세하면서 해석이나 소통의 양상이 약화 것이 영성 예술이다. 구상을 넘어선 추상은 개별자에 대한 주체의 시선
되거나 전면적으로 변화되었다. 혹은 객체의 응시에 따르는 재현이나 표현이 아니라, 개별자이자 보편자
가 스스로 그리고 저절로 나타나는 현현하는 자현의 예술적 형상화가 역
이와 연관하여 미니멀리즘이 추구한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라든가, 단색 시 개별자이자 보편자인 감상자가 작품을 통해 작가와 공명하는 예술적
화가들이 보여준 반복적 몸짓의 수행성 등이 동양의 무위자연 사상과 상 향유가 이루어진다.
통한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이는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을 전제한 채 그 예술적 수행과 실천이 완성되면 더 이상 깨달음의 완성을 향해 애쓰는
경계를 지우려는 노력으로서 마음이 만들어내는 기호작용을 벗어나서 유위(有爲)적 수행의 몸짓도 멈추게 마련이듯이, 무위(無爲)의 예술은 자
사물 자체를 드러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무위자연에 가까운 듯하지만, 여 연의 영성이 모든 존재의 의식을 통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자연의 영
기서 사물 자체는 보편적 근원자가 아니라 현상적 개별자일 뿐이며, 그것 성은 주관이나 객관의 유위(有爲)인 경관(景觀)이나 경치(景致)가 아니
을 표상하는 수행적 몸짓 역시 내용을 거세한 형식의 예술적 창조라고 할 라 궁극적 깨달음이 강렬하게 빛나며 살아 움직이는 무위(無爲)의 풍경(
지라도 유상삼매(有相三昧)에 머물거나, 무상삼매(無相三昧)를 지향하지 風景)으로 나타난다. 영성 예술은 재현과 표현을 넘어서는 자현(自現)의
만 부정의 형식에 얽매여서 특정한 패턴의 반복에 불과한 수행적 몸짓의 형상화를 통해 자연(自然)의 영성이 현현하는 무위자연의 미학이며, 궁
한계에 갇혀서 진부화의 과정으로 전락할 여지가 있다. 극적 보편자가 바로 현상적 개별자인 본연삼매(本然三昧)의 세계인 것
그러나 애쓰는 노력이 있는 한 그것은 무위가 아니라 유위다. 유위가 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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