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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1 Machiavelli
것이 요청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마키아벨리 자신인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방법상의 현실주의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현실주의는 비참한 현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왜냐 하면 현실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해야하는 것과 분리되고 있으며, 그 점에서 해야할 이상은 현실에 대하여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
다.
당시의 이탈리아 휴머니즘의 이상은 공공적인 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스러운 공민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키아벨리에 있어선 공허한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 공동체의 해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공적인 것에서부터 사적인 것으로 퇴각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
이고 몸의 위험은 피하려고 하면서도 물욕에는 눈이 어두운 것이다."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하여 마키
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지상적인 욕구의 충족을 찾고야 마는 르네상스적인 인간상 속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행동원리는 명예욕이든 물욕이든 욕망이라는 동질적인 것으로 환원된다. 이것은 인간
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비슷한 행동을 행한다는 것, 즉 인간의 행동의 계산 가능성을 보증하고 따라서 인간
의 행동을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정치는 군주의 기술로서 이야기된다. 가령 "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든지, 혹은 "가해행위는 일시에 해버리고 은혜는 조금씩 하라"와 같
은 통치술이 경고조로 이야기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욕망에 뒷받침된 인위(人爲)를 가지고 야망과 탐욕이 뒤끓는 현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런데
인위란 것은 우선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잘 해낼 수 있으려면 냉
정한 합리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것만으로는 맹목적일 수밖에 없는 힘은 냉정함과 결부되어서 비로소 충
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교묘히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야수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의 본을 따야 한다. 그것은 사자는 올가미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기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가미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일 필요가 있고 늑대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는 사자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가는 그 형성 유지를 위해서 종교에 의한 권위부여도 도덕에 의한 정당화도 필요치 않다. 그것은 힘과
합리성을 겸비한 한 사람의 군주의 인위만을 필요로 한다. 즉 목적-수단의 계열의 냉정한 통찰과 목적을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을 용감하게 취하는 역량에 의해서만 국가는 적절하게 통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
한 의미에서 국가는 부르크하르트가 말한 인위에 의한 '예술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국가관은 르네상스적
인간상의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역전, 즉 인간의 근원적인 힘에 대한 신뢰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근원적인 힘을 군주 혼자에게만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은 권력국가설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 국민국가는 절대주의적인 권력국가를 매개로 해서 형성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의미에서 마키
아벨리의 국가관은 근대사의 진행에 앞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근원적인 힘을 군주 아닌 신민 측
에 인정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근대 사회계약설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인위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을 비
르투(virtu)라고 불리운다. 그것은 라틴어의 비르투스라는 말의 이탈리아어이지만 원래가 윤리적인 덕을 의
미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 있어선 비르투는 전통적인 의미대로의 덕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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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요청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마키아벨리 자신인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방법상의 현실주의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현실주의는 비참한 현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왜냐 하면 현실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해야하는 것과 분리되고 있으며, 그 점에서 해야할 이상은 현실에 대하여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
다.
당시의 이탈리아 휴머니즘의 이상은 공공적인 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스러운 공민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키아벨리에 있어선 공허한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 공동체의 해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공적인 것에서부터 사적인 것으로 퇴각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
이고 몸의 위험은 피하려고 하면서도 물욕에는 눈이 어두운 것이다."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하여 마키
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지상적인 욕구의 충족을 찾고야 마는 르네상스적인 인간상 속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행동원리는 명예욕이든 물욕이든 욕망이라는 동질적인 것으로 환원된다. 이것은 인간
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비슷한 행동을 행한다는 것, 즉 인간의 행동의 계산 가능성을 보증하고 따라서 인간
의 행동을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정치는 군주의 기술로서 이야기된다. 가령 "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든지, 혹은 "가해행위는 일시에 해버리고 은혜는 조금씩 하라"와 같
은 통치술이 경고조로 이야기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욕망에 뒷받침된 인위(人爲)를 가지고 야망과 탐욕이 뒤끓는 현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런데
인위란 것은 우선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잘 해낼 수 있으려면 냉
정한 합리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것만으로는 맹목적일 수밖에 없는 힘은 냉정함과 결부되어서 비로소 충
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교묘히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야수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의 본을 따야 한다. 그것은 사자는 올가미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기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가미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일 필요가 있고 늑대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는 사자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가는 그 형성 유지를 위해서 종교에 의한 권위부여도 도덕에 의한 정당화도 필요치 않다. 그것은 힘과
합리성을 겸비한 한 사람의 군주의 인위만을 필요로 한다. 즉 목적-수단의 계열의 냉정한 통찰과 목적을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을 용감하게 취하는 역량에 의해서만 국가는 적절하게 통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
한 의미에서 국가는 부르크하르트가 말한 인위에 의한 '예술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국가관은 르네상스적
인간상의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역전, 즉 인간의 근원적인 힘에 대한 신뢰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근원적인 힘을 군주 혼자에게만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은 권력국가설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 국민국가는 절대주의적인 권력국가를 매개로 해서 형성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의미에서 마키
아벨리의 국가관은 근대사의 진행에 앞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근원적인 힘을 군주 아닌 신민 측
에 인정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근대 사회계약설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인위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을 비
르투(virtu)라고 불리운다. 그것은 라틴어의 비르투스라는 말의 이탈리아어이지만 원래가 윤리적인 덕을 의
미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 있어선 비르투는 전통적인 의미대로의 덕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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